항목 ID | GC06800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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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普賢山地區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허종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07월 31일 - 보현산지구전투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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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0년 08월 06일 - 보현산지구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보현산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
종결 장소 | 보현산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국군|북한군 |
[정의]
1950년 6.25전쟁 중 경상북도 청송군 보현산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과 북한군 간의 전투.
[역사적 배경]
보현산(普賢山)[1,124m]은 청송군 현서면과 영천군 화북면의 경계에 있는 울창한 삼림의 높고 험준한 산이다. 보현산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좌익 무장 유격대[빨치산]가 근거지를 두고 활발히 활동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49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국군과 경찰의 진압 작전으로 보현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좌익 무장 유격대의 활동은 크게 약화되었다.
[경과]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북한군의 독립부대인 제766부대가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후 내륙으로 진출하여 구암산(九巖山)[807m]과 보현산 일대에서 기존 좌익 무장 유격대와 합류하였다. 북한군 제766부대의 주요 임무는 청송군과 영천군, 의성군 등지를 무대로 후방을 교란시키고 국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보현산을 포함한 동부전선 일대를 담당하던 국군 제3사단은 북한군 제766부대의 진압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영덕 지역에서의 전투 상황이 급박하여 부득이 병력을 영덕 방면으로 전환시키고 북한군 제766부대의 진압 업무는 경찰이 담당하였다. 7월 중순 강원도 경찰비상 경비사령부 예하의 전투경찰 제3대대와 제6대대는 청송~기계[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와 의성~기계로 통하는 도로가 교차하는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를 점령하고, 북한군 제766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7월 14일 전투경찰 제3대대의 경찰중대가 길안천(吉安川)을 건너 도평리를 점령하려는 북한군 제766부대를 격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 제766부대가 병력을 대폭 증강하고 전투경찰 제3대대의 경찰중대를 포위하며 공격하자 경찰중대는 전력의 열세로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7월 15일 경찰중대는 병력을 지원받아 도평리로 진격하여 도평리를 탈환하고 북한군 제766부대를 현동면 월매리 부근으로 격퇴시켰다. 같은 날 저녁에 경찰중대는 북한군 제766부대의 공격을 받아 다시 철수했다가 다음날 공격하여 재탈환하였고 도평리 일대에 분산하여 은신하고 있던 북한군의 진압 작전을 수행하였다. 7월 17일 북한군 제766부대의 주력이 보현산으로 후퇴하였다.
[결과]
7월 26일 보현산에 주둔하던 제766부대는 현서면 갈천리에서 북한군 유격대와 합류하여 국군의 후방을 위협하기 위해 현서면 구산리 부근으로 북진하였다. 7월 27일에는 북한군 유격대 1,000여 명이 영덕군과 영양군에서 남하하여 보현산에 근거지를 구축하였다. 국군 제1군단은 의성군에 전술지휘소를 설치한 후 경찰 병력만으로는 북한군 제766부대를 진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안동~영천 신녕 사이의 보급로 확장과 도로 정비 임무를 수행하던 제1201건설공병단을 7월 26일 현서면 구산리에 투입하였다. 7월 29일에는 육군본부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도 보현산에 투입하였다.
7월 31일 국군은 북한군 제766부대의 2개 대대 병력이 제1201건설공병단이 배치된 569고지로 공격해 오자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하였다. 국군 제1유격대대는 북한군 제766부대를 완전히 격퇴하기 위해 현서면 사촌리 동남쪽의 522고지와 보현산 동쪽 859고지에 각각 1대 중대를 배치하여 보현산 일대의 포위망을 형성하고, 주변 일대의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후 경찰대대와 연합작전을 벌여 도평리와 보현산 외곽지대에서 북한 유격대를 진압하였다. 8월 6일 국군 제1유격대대는 보현산을 포위하고 북한군 제766부대를 공격하여 북한 유격대의 근거지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의의와 평가]
보현산지구전투는 6.25전쟁 초기 중동부 지역 작전에서 대구를 점령하기 위해 총공세를 펴던 북한군의 공격 속도를 둔화시키고, 국군을 재편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여 이후 공세 작전을 준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