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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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周王山城 |
영어공식명칭 | Juwangsan Mountain Fortress |
이칭/별칭 | 주방산성(周房山城),자하성(紫霞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산8-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허일관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산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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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산성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개설]
주왕산성(周王山城)은 상의리의 주왕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퇴뫼식의 석축 산성이다. 청송군의 여러 산성 중 유일하게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는 산성이다. 정유재란 때 의병항쟁 활동지로 박성(朴惺)이 청송 주왕산성 대장(周王山城大將)이 되어 활약하였다.
[건립 경위]
주왕산성은 자하성(紫霞城) 또는 주방산성(周房山城)으로도 불린다. 축조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주왕(周王) 전설과 관련하여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왕 전설에 따르면 본래 주왕산(周王山)[720.6m]의 이름은 기암괴석이 병풍 같다는 의미의 석병산(石屛山)이었다. 그런데 당(唐)의 주도(周鍍)라는 인물이 주왕을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후 주왕산으로 숨어들었다. 이에 신라는 당 황제의 명을 받아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신라와의 전투로 주왕이 주왕산에서 비운의 최후를 맞았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이 산을 주왕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위치]
주왕산성은 대전사(大典寺)로부터 동쪽 계곡으로 1㎞ 떨어진 대전사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羅漢峰)을 거쳐 주왕굴(周王窟)을 중심으로 높이 720m 정도의 능선이 이어지는 정상부에 있다. 경사는 비교적 완만한 편이며 사방을 방어하기 유리한 곳이다.
[형태]
주왕산성은 정상부의 8부 능선을 따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주왕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주방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는 1,450척이다. 삼면이 매우 험하고 안에는 두 개의 계곡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거에는 약 30리[12㎞]가 넘는 큰 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서북쪽 사면에는 산성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고 돌문, 사창(司倉) 등 성지(城址)의 잔해가 주위에 흩어져 있다. 성벽은 돌로 쌓았으나 훼손 상태가 심해 구체적인 축조 방법은 알 수 없다. 주왕산성은 계곡부에 입지하고 있고 주변에 사찰이 있는 환경에 조성되어 있으며, 계곡을 가로질러 쌓은 석축을 통해 볼 때 방어적인 성격의 성곽임을 알 수 있다.
[현황]
주왕산에서 확인되는 주왕산성은 두 곳으로 구분된다. 한 곳은 자하교 주변에서 확인되는 석군과 계곡부의 성문과 수구문지로 주왕산으로 들어오는 초입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곳[상의리 성지]이다. 나머지 한 곳은 주왕산 장군봉을 중심으로 쌓은 산성[주왕산성]이다. 현재는 두 성벽의 존재는 모두 주왕산 일원을 지키기 위한 주왕산성의 성벽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주왕산성은 대전사 등 사찰과 함께 자리잡은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 사이에 현의 치소나 사찰을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전사의 경우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문화층과 고식연화문수막새가 출토되어, 주왕산성의 창건 연대가 삼국시대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