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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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神- |
이칭/별칭 | 메구,매구,마당놀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언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정월대보름 무렵 지신을 달래며, 한 해 동안 가정의 복덕을 기원하는 의례.
[개설]
지신밟기는 음력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집터를 관장하는 신인 지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고 잡귀를 쫓아 재액(災厄)을 몰아내기 위해 집집마다 풍물을 치면서 마을을 도는 민속놀이다. 지역에 따라 '메구', '마당놀이' 등으로 불린다. 청송군에서는 음력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동제를 지낸 후 풍물패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고 지신밟기 노래를 부르면서 지신을 밟는다. 메구, 매구, 마당놀이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지신밟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공동체 제사의례의 일종으로서 중국 진나라 진수(陳壽)[233~297)가 엮은 사서(史書)『삼국지(三國誌)』의「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에 보이는 고조선의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잡귀를 쫓아내고 복을 부르기 위한 성격은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 2권에 나타나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오래전부터 이미 화를 피하고 복을 기원하기 위한 의례가 민간에도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오청(吳晴)의 『조선의 연중행사(朝鮮の年中行事)』에는 지신밟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는 오늘날의 모습과 일치된다.
[절차]
청송군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동제를 지낸 후 아침에 풍물패들이 마을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고 지신밟기 노래를 부르면서 지신을 밟는다. 풍물패는 주로 젊은 남성들로 이루어진다. 풍물패의 규모는 마을의 규모에 따라서 다른데, 부남면 감연1리의 경우에는 서른에서 마흔 명의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풍물을 쳤다. 지신을 밟으면 그해 재수가 좋다고 하여 밟아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지신밟기를 할 때는 먼저 마당을 한 바퀴 빙돌다가 부엌에 들어가서 돌리고, 부엌의 뒤주, 조왕에게 지신을 밟는다. 매귀는 원하는 때에만 밟아 준다.
풍물패가 지신을 밟으면 집주인은 음식과 술을 풍물패에게 대접한다. 풍물패는 집주인에게 음식을 받고 따로 돈이나 쌀을 추렴하는데 이를 걸립이라고도 한다. 거두어들인 쌀이나 돈은 잔치 비용에 보태거나 마을 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지신밟기는 가가호호(家家戶戶)의 복과 안녕을 축원할 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역할도 한다. 또한 걸립을 통해 모은 기금은 적게나마 마을공동체에 재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황]
청송군 지역에서 지신밟기는 주로 정월대보름 동제를 지낸 뒤에 행해졌다. 그러나 인구 유출과 주민들의 고령화로 동제가 많이 간소화되고, 풍물패를 맡아 마을을 돌며 풍물을 치고 걸립을 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줄어들어 지신밟기를 하는 마을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주왕산면 주산지리에서는 비록 간소화되었으나 지금도 동제 후에 제당에서부터 풍물을 치며 마을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지신밟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