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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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Ferr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도로나 교량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 강물을 이용하여 나룻배를 부리던 곳.
[개설]
칠곡군 8개 읍면 중 5개 읍면 중앙을 관통하여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이 낙동강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에 따라 오랜 옛날부터 칠곡 지역에는 강 건너 마을을 이어 주는 나루가 여러 곳에 설치되었다. 나룻배는 사람이나 짐을 싣고 강을 건너다니는 역할을 하였고, 낙동강 중류 지역에 위치한 칠곡군의 나루터는 북부 지방과 남부 해안 지방의 물류와 문화 교류의 요충지 역할도 하였다.
[낙동강 변 나루터 종류]
1970년대까지 칠곡 지역 낙동강 동쪽 강변[왜관읍·석적읍]에서 서쪽 강변[북삼읍·약목면·기산면]을 오가는 나루터는 다음과 같았다.
1. 강촌 나루터[밤실 나루터]-석적읍 남율리⇄말구리 나루터[마진(馬津), 선창(船艙)]-북삼읍 오평리
2. 흙소 나루터[토소진(土沼津)]-석적읍 포남리⇄관성 나루터[관성진(觀星津)]-약목면 덕산리
3. 따구발 나루터[중지 도선장]-석적읍 중지리⇄임호정 나루터[왜관진(倭館津)]-약목면 관호리
4. 돌밭 나루터[공암진(孔巖津), 고도암진(高道巖津)]-왜관읍 석전리⇄반상골 나루터[약목진(若木津)]-약목면 관호리
5. 왜관 나루터[왜관 도선장]-왜관읍 왜관리⇄강정 나루터[강정진(江亭津)]-기산면 죽전리
6. 강창 나루터[금산진(錦山津)]-왜관읍 금산리⇄흰돌 나루터[백석진(白石津)]-기산면 노석리/ 노티 나루터[노상진(老峠津)]-기산면 노석리
7. 가실 나루터[낙산 도선장]-왜관읍 낙산리⇄용대골 나루터[새터 나루터]-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8. 아랫들 나루터[금남 도선장]-왜관읍 금남리⇄띠밭 나루터[아전진(牙田津)]-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특징 및 역할]
칠곡군의 나루터 중 왜관읍의 돌밭 나루터와 약목면의 임호정 나루터에서는 경상북도 안동과 동락 등 상류 지방의 농산물과 부산, 삼랑진 등 하류 해안 지방의 수산물 및 수입 상품 등이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거두어들인 세곡(稅穀)을 저장하는 공세(貢稅) 창고, 즉 팔거현 가실창[강창 나루터], 약목현 약목창[임호정 나루터], 인동현 중지창[창마 나루터]이 설치되어, 선박을 이용해 세미(稅米)나 공부(貢賦)를 방출하고 수납하였다. 또한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던 일본인 사신이나 상인이 잠시 머물러 쉬어 가고, 물자 교역의 장소였던 왜관(倭館)이 임호정 나루터와 강창 나루터에 각각 설치 운영되었다.
1905년(고종 42) 경부선 철도 개통 후에는 철도가 설치되지 않았던 지역의 수운과 연계하여 물류가 유통되었다. 이때 물류는 왜관역까지는 철도로 수송된 상품을 왜관역에서 낙동강 선착장까지 가설된 소철로(小鐵路)를 이용하여 상품을 운반하였고, 철도 시설이 없던 안동, 낙동 등지에는 낙동강 뱃길로 운송되었다. 왜관 소철로는 보통 철로의 표준 궤도 넓이는 1,455㎜이지만 소철로는 1,067㎜의 좁은 철도[협궤 철도]로 네 바퀴 철수레[무개차]를 올려 인력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물류 이동 시설이었다.
[현황]
1941년 경부선 철도가 복선화되고 경부선 왜관 철교가 사람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교량으로 바뀌면서 왜관 나루터를 비롯한 칠곡 지역 나루터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그 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기산면 일대 장꾼들이 나루터를 이용하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1970년대 완전히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