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156 |
---|---|
한자 | 江亭- |
영어의미역 | Gangjeong Ferry |
이칭/별칭 | 강정진(江亭津)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장영복 |
성격 | 옛 나루터 |
---|---|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죽전리 낙동강 강변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죽전리 낙동강변에 있던 나루터.
[개설]
기산면 죽전리에 자연마을인 강정마을은 낙동강 연안에 위치하고, 마을 뒷산 봉양서원(鳳陽書院)에 정자가 있었기에 마을 이름을 강정(江亭)으로 지었으므로 나루터의 이름도 강정나루터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강 건너의 왜관나루터와 마주하면서 나룻배로 화물이나 사람을 부리는 곳이다.
[건립경위]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던 시절에 성주와 기산 지방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달구지에 싣고 강정나루까지 와서 달구지와 함께 배에 싣고 왜관으로 건너 왜관나루터 언덕 위에 당시 경상북도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남일정미소에서 곡식을 도정하여 전국 각지에서 온 상인들에게 쌀을 팔고, 부산 등 남쪽 지방에서 뱃길로 운반된 소금을 비롯한 해산물을 사서 돌아가는 교통 시설로 건립되었다.
[변천]
1939년에 경부선 철도가 복선화 되면서 낙동강 복선 철교가 새로이 건설되고, 단선 철도 때 철교로 이용한 다리를 인도교로 변경하기 전까지 강정나루터는 왜관과 성주 간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당시 사람은 물론 짐을 실은 소달구지와 버스 그리고 화물 트럭까지도 싣고 운반하였다. 인도교를 이용한 후부터 1970년대까지도 기산 방면으로 가는 장(場)꾼이나 통학생들은 많이 이용하였고, 1년 내 이용한 배 삯은 봄·가을 추수 때 갚았다고 한다.
[현황]
지금은 강정나루터의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