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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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光材 |
영어음역 | Jeong Gwangjae |
이칭/별칭 | 영백(英伯),미강(嵋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영백(英伯), 호는 미강(嵋岡).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으로 겸재(謙齋) 정익동(鄭翊東)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평산신씨, 부인은 옥산장씨이다.
[활동사항]
1758년(영조 34)에 태어나 재주와 자질이 무리에서 뛰어났다. 10세에 경전(經傳)을 두루 읽고 문(文)을 함에는 마땅히 선진(先秦)에 뜻을 두었고, 학(學)을 함에는 마땅히 성현(聖賢)에 뜻을 두니 송이석(宋履錫)·이동헌(李洞獻)·이충록(李忠祿) 등과 같은 고을의 나이 많은 석학(碩學)들 모두가 호련(瑚璉)의 그릇과 동량(棟梁)의 재목으로 기대했다. 성품 또한 침착하고 심후하여 일찍이 재주와 학문으로 남에게 뽐내지 않았으며 남긴 문집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