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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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論東 |
영어음역 | So Nondong |
이칭/별칭 | 응렬(應烈),사원,모재,소론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영복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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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
성별 | 남 |
생년 | 1569년 |
몰년 | 1649년 |
본관 | 진주 |
대표관직 | 통정대부 절충장군 |
[정의]
조선 시대 칠곡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응렬(應烈), 자는 사원(士元), 호는 모재(慕齋). 진사(進士) 소노세(蘇老世)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많은 전공(戰功)이 있어 선무훈(宣武勳)으로 기록되어 벼슬은 절충장군이 되었고, 1640년(인조 18)에 이명웅이 안찰사로 있을 때 천거되어 가산산성[칠곡군 가산면]을 축성하는 데 공을 세웠다. 당시 축조된 가산산성은 둘레가 10리, 9개의 우물과 7개의 못, 소금창고, 은광 등이 있었다. 임금으로부터 교지가 있으니 ‘동남을 지키는 일을 논의할 만 하도다’라고 하였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절충장군에 올랐고, 1640년(인조 18)에 가산산성을 쌓으면서 충성과 힘을 다하여 논동(論東)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진무훈에 책록되었다. 기암(起巖) 이중업이 묘갈을 지었다. 후손들이 추모지소로 영모재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