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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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世濂 |
영어음역 | Gim Seryeom |
이칭/별칭 | 도원(道源),동명(東溟),문강(文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 증조할아버지는 영유현령(永柔縣令)을 지낸 김홍우(金弘遇)이고, 할아버지는 영흥도호부사를 지낸 김효원(金孝元)이다. 아버지는 통천군수를 지낸 김극건(金克鍵)이고, 어머니 허씨(許氏)는 홍문관전한을 지낸 허봉(許篈)의 딸이다.
[활동사항]
22세에 생원·진사가 되고 1616년(광해군 8)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예조좌랑겸시강원사서를 지냈다. 이어 홍문관수찬·지제교를 거쳐 1617년 사간원정언이 되었고, 폐모론자를 탄핵하다가 평안북도 곽산(郭山)으로 유배되었는데 1년 만에 다시 강릉으로 이배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다시 기용되어 홍문관수찬·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를 거쳐 이듬해 수의어사(繡衣御使)로 충청도를 살피고, 사헌부지평·교리·부응교를 역임했다.
1634년(인조 12) 왕의 뜻을 거슬러 현풍현감으로 밀려났다가 1636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사간이 된 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1638년 동부승지·병조참지를 거쳐 병조참의·형조참의·이조참의와 부제학을 역임했다. 1641년(인조 19)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외직을 구하여 안변도호부사·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1644년(인조 22)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대사헌겸홍문관제학, 도승지를 거쳐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학문과 사상]
1641년 외직으로 나가서 『근사록(近思錄)』, 『소학(小學)』, 『성리자의(性理字義)』, 『독서록(讀書錄)』 등을 간행하고, 향약을 실시하여 도민의 교화에 힘썼다. 만년에는 경서 연구에 몰두했으며, 문장과 시에 조예가 깊어 당대 제일이라고 칭송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동명해사록(東溟海槎錄)』과 문집인 『동명집(東溟集)』이 전해진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 본복마을 뒷산에 있으며 묘역은 약165.29m²정도이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그 오른쪽에 상석을 향해 묘비가 서 있다. 상석 정면 왼쪽에 동자석이 있으며 그 뒤에 망주석이 1조, 문인석이 1조씩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강(文康)이고, 신도비(神道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