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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140
한자 金生
영어음역 Gim Sae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현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예가
성별
생년 711년(성덕왕 10)연표보기
몰년 791년(원성왕 7)연표보기
본관 미상

[정의]

통일신라시대 때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서예가.

[활동사항]

711년(성덕왕 10)에 태어난 김생(金生)은 안동의 문필산, 경주의 경일봉 석굴, 봉화 청량산 김생굴, 음성군 원통산 기슭의 김생암 등에서 글씨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충주 북진의 언덕에 김생사(金生寺)가 있었는데 김생이 두타행(頭陀行: 승려의 수련)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이를 미루어볼 때 김생은 말년에 충주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김생(金生)조에,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80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행서·초서가 모두 입신의 경지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학문과 사상]

고려 숙종 때 학사 홍관(洪灌)이 송나라 변경(汴京)에서 한림대조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에게 김생의 행초서 1권을 보이자, 양구와 이혁이 왕희지의 글씨라고 감탄하였을 정도로 명필로 전해진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생을 신품제일(神品第一)로 평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김생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것으로는 경복궁에 있는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가 있다. 비문은 고려시대 954년(광종 5) 승려 단목(端目)이 김생의 행서를 집자(集字)한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왕희지·구양수의 단정하고 미려한 글씨체와는 달리 짜임새나 획의 처리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틀에 박힌 글씨체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면서 힘이 넘치는 개성을 잘 표출하고 있다.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사성절보(四聲絶寶)」·「여산폭포시(廬山瀑布詩)」 등도 김생서(金生書)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인본(印本)으로 전하고 있다.

그 밖에 포천군 소흘읍 송우리의 서명구묘비(徐命九墓碑), 양주군 주내면 산복리의 조계묘비(趙棨墓碑) 등의 집자비가 있다. 또한 경주의 창림사비 비문이 김생의 글씨였다고 하지만 현재 원비는 물론 탁본조차 전하지 않는다. 원나라의 조맹부(趙孟頫)는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 김생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나라의 명필조차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평했다.

[상훈과 추모]

충주시의 우륵문화제 행사 때 추모제를 올리는 5현 중의 한 분이며,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 1996년 충주에서 서예가들에 의해 김생연구회(초대 회장 손경주)가 만들어져 김생의 유묵을 찾아 연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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