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12 |
---|---|
한자 | 忠州金生寺址 |
영어의미역 | Chungju Gimsaeng-Templ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65-5[김생로 325]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장준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22일 - 충주 김생사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4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충주 김생사지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절터 |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통일신라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65-5[김생로 325]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반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개설]
사찰의 창건 시기 및 창건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 때의 명필인 김생(金生)[711~791]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관련 기록으로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종휘(李種徽)[1731~1797]의 시문집인 『수산집(修山集)』에 「김생사중수기(金生寺重手記)」가 전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충주목 불우조」에 관련 내용이 전하는데, 사찰이 북진애(北津崖)에 있었다는 것과 김생이 이곳에서 두타행(頭陀行)을 한 까닭에 김생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9년에 충청대학교박물관에서 정밀 학술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는 충주시에서 문헌과 구전으로 전하는 김생사지와 김생에 대한 실증적 규명을 위해 의뢰하여 이루어졌다. 그 결과 보고서에는 김생의 생애와 관련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고, 유적에 대한 기초 정밀 조사를 실시하여 유구를 확인한 내용과 많은 지표 유물들을 수습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보고서에는 발굴 조사의 필요성과 함께 유적지의 보존을 위한 제안이 제시되었다.
2001년과 2002년에 이루어진 발굴 조사는 정밀 학술 조사에 기초하여 실시되었다. 충청대학교박물관에서 유물이 수습되었던 사역(寺域)의 동단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4년에는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충주 용두~금가간 우회도로 건설 구간에 해당하는 김생사지 구간을 조사하였다.
충청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는 사역을 지형에 따라 크게 Ⅰ, Ⅱ, Ⅲ, Ⅳ지구로 나누어 진행하였으나, 사역이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되어 특별한 유구를 확인할 수 없었고, 확인된 유구 또한 명확한 규모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충주 김생사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통하여 김생사의 창건과 경영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함통(咸通) 13년명 암막새기와는 9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유물로, 김생사의 창건이 통일신라대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단서가 되었다. 또한 사역 내에서 목곽 2기가 매장된 채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이 목곽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청동 그릇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 목곽의 재질은 소나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나 절대 연도를 비정할 수 없었다.
또한 청동 그릇은 단조와 열처리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많은 수량의 그릇들이 무작위로 파손되어 유물의 원형을 살려 복원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편 2004년에 실시된 중앙문화재연구원의 조사에서는 반송리 64-17번지 지역에서 김생사(金生寺)명 기와 1점이 발견되었다. 이는 김생사의 원 위치를 확인해 주는 유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현황]
김생사의 앞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나즈막한 반송산이 감싸고 있다. 현재 사역은 과수원으로 변하였고, 중심에는 근래에 김생연구회에서 세운 ‘신라서가김생유허기념집자비(新羅書家金生遺墟記念集字碑)’가 서 있다. 주변 지역에는 탑재로 쓰였던 석재와 기와편, 도자편이 산재해 있다. 2000년 12월 22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생사지는 김생(金生)과 관련된 사찰의 터로 김생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운영되었던 사찰이다. 또한 충주 지역에 전하는 김생 관련 설화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확인된 목곽과 청동그릇은 향후 유적, 유물의 과학적 보존과 분석 방법에 도움을 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