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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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郡 |
영어음역 | Chungju-g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영주 |
[정의]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춘·황간·청산·연풍의 8개 군이 폐합되고, 청주·영동·옥천·보은·괴산·단양·음성·진천·청주의 10개 군이 남게 되었다. 조선총독부가 이렇게 과감하게 군을 통합한 이유는 통지 비용의 절약과 통치의 편의 때문이었다.
[내용]
1933년까지 충주군수로 재임한 인물들은 서회보(徐晦輔)·윤석필(尹錫弼)·신창휴(申昌休)·이경식(李敬植)·김홍규(金鴻圭)·김기선(金基善)·최지환(崔志煥)·김석영(金錫泳) 등이다. 1942년 기준으로 충주군은 충주읍·이류면(利柳面)[현 대소원면]·신니면(薪尼面)·가금면(可金面)[현 중앙탑면]·앙성면(仰城面)·금가면(金加面)·주덕면(周德面)·동양면(東良面)·노은면(老隱面)·산척면(山尺面)·엄정면(嚴政面)·소태면(蘇台面)·살미면(乷味面)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변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7호로 감영 유수제도를 폐지하고, 칙령 제98호로 지방제도를 개편하여 전국을 23부 336군으로 정할 때 충주부(忠州府)는 20개 군으로 구성되었다. 이때 충주도 군(郡)이 되어 부청소재지가 되었다. 이것이 충주군의 처음이다.
1896년(고종 33) 갑오개혁이 실패하자 전국 23부를 13도로 개정하자, 충청북도 충주군이 되고, 충주군은 충청북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그러나 1908년 충청북도청이 청주로 옮기고 충주군으로 남게 되었다. 1913년 군과 면을 폐합하여 충주는 충주군 읍내면이 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되고, 충주군은 중원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충주군의 명칭이 사라졌다.
[현황]
1995년 중원군과 충주시가 통합되어 현재 주덕읍·살미면·수안보면·대소원면·신니면·노은면·앙성면·중앙탑면·금가면·동량면·산척면·엄정면·소태면과 성내동·성남동·성서동·충인동·충의동·교현1동·교현2동·용산동·지현동·문화동·호암동·직동·단월동·가주동·풍동·용관동·용두동·달천동·봉방동·연수동·칠금동·금릉동·목행동·용탄동·종민동·안림동·목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충주는 끊임없이 발전하여 충주시로 개칭되었다. 충주군의 명칭은 사라졌으나 충주의 전통을 유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