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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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聖于勒先生追慕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Monument for Akseong Ureuk Maste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 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구 |
성격 |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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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비좌이수 |
건립시기/일시 | 1977년 |
관련인물 | 우륵 |
재질 | 화강암|오석 |
높이 | 357㎝ |
너비 | 74.5㎝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 1-1 |
소유자 | 충주시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악성 우륵의 공적을 추모하는 비.
[개설]
우륵(于勒)은 원래 가야국(伽倻國) 사람으로, 가실왕(嘉悉王)이 성열현(省熱縣)의 악사 우륵에게 가야금 곡조 12곡을 짓게 하였다. 후에 우륵이 신라로 귀화함에 진흥왕이 국원성에서 살게 하였다. 이후 진흥왕은 우륵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여 대나마(大奈麻) 계고(階古), 법지(法知), 대사(大舍) 만덕(萬德) 3인을 제자로 삼게 하였다. 진흥왕의 적극적인 장려책 덕분에 가야금은 크게 발전하였는데, 가야금의 두 음조 중 「하림조(河臨調)」는 충주 지역을 배경으로 한 가야금 곡으로 판단된다.
[건립경위]
악성 우륵의 위업과 넋을 기리는 마음과 충주 지역의 문화, 예술의 중흥을 다짐하는 뜻에서 제7회 우륵문화제에 즈음한 1977년 10월 20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장 허재 김풍식 외 회원 일동의 명의로 비를 세웠다.
[위치]
충주시 칠금동 속칭 열두대 절벽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시내에서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중앙탑 방면으로 진행하다 보면 잔디구장이 나타나고, 잔디구장 옆으로 아담한 숲으로 둘러싸인 동산이 나타난다. 이 동산의 오른쪽 솔밭에 악성 우륵 선생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비좌이수의 형태로, 전체적인 비의 높이는 357㎝이며, 비신의 너비는 74.5㎝이다. 두께는 45㎝이고, 받침돌은 귀부로 육각형의 귀갑 문양을 하고 있으나 섬세하지 못한 편이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태로, 전통적인 양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금석문]
비제는 30㎝×25㎝ 크기의 예서체로 ‘악성우륵선생추모비(樂聖于勒先生追慕碑)’라 음기하였으며, 본문은 3㎝×3㎝의 해서체의 국한문 혼용체로 음기하였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碑題 : 樂聖于勒先生追慕碑(隸書)
"忠州는 예로부터 國原城 또는 蘂城이라고 일컬어져 왔고 韓國의 中央 地帶에 位置하고 있어 中原 또는 忠州라고 불리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일찍이 新羅時代부터 文學과 歌舞가 盛行하여 可謂 文化의 고장으로서의 傳統과 面貌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特히 彈琴臺는 新羅의 樂聖 于勒이 伽倻琴을 彈奏하든 由緖깊은 곳이며 壬辰倭亂 當時에는 巡邊使 申砬將軍이 背水陣으로서 倭敵과 奮戰하다가 마침내 戰勢不利로 千秋의 恨을 남긴 채 殉國成仁한 戰跡地로서 有名한 곳이기도 하다. 樂聖 于勒은 伽耶國人으로서 王山岳先生 또는 蘭溪朴堧 先生과 더불어 우리나라 三樂聖 中의 한분이시다. 伽倻國이 新羅 法興王 十九年(五三二·AD)에 滅亡하자 樂聖 于勒은 新羅로 亡國恨을 달래었고 十二藥曲을 大成한 곳이 바로 이곳 彈琴臺의 大門山이다. 至今도 彈琴臺에는 于勒이 寓居하였다고 믿어지는 建造物의 遺趾가 발견되고 있다. 樂聖 于勒이 이곳 山上에서 山紫水明한 周圍의 風光을 바라보면서 亡國의 슬픔과 望鄕의 恨을 달래며 伽倻琴을 彈奏할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優美 淸雅한 音曲에 陶醉하여 떠날줄을 몰랐다고 한다. 오늘도 彈琴臺에 오르면 저 아득한 千四百餘年의 歲波를 타고 哀歡에 젖은 伽倻琴의 玄妙한 音律이 은은히 들러오는 듯하며 變轉無雙한 世態의 無常함을 불현듯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彈琴臺하면 樂聖 于勒을 聯想하고 象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實로 于勒先生이야말로 新羅 眞興王代의 文化史를 아름답게 繡놓은 樂聖이시었으며 當時 이 고장 文化와 藝術에 크나큰 影響과 發展을 이룩하게 하였든 것이니 오늘날까지 連綿히 이어온 伽倻琴의 傳來와 함께 이곳 아름다운 遺蹟인 彈琴臺를 圍繞한 山河와 더불어 永遠토록 그 빛을 더하여 가리라. 이에 우리는 樂聖 于勒 先生의 偉業과 넋을 追慕하고 기리는 마음과 이 고장 文化와 藝術의 中興을 다짐하는 뜻에서 第七回于勒文化祭에 즈음하여 同志들의 뜻을 모아 삼가 이 碑를 세우노라"
西紀 一九七七年 十月 二十日
追記 韓國藝術文化團體總聯合會 忠州支部長 醫學博士 虛齊 金豐埴外 會員一同은 碑를 세우고, 藝術院會長 文學博士 月灘 朴鍾和는 글을 지었으며, 醫學博士 西峰 金思達은 글을 쓰다
[현황]
악성 우륵 선생 추모비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충청북도 지방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탄금대(彈琴臺)이다. 탄금대는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절벽이 있고 숲이 우거져 산책하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탄금대를 올라서면 충주문화원과 야외 음악당을 비롯하여 조웅 기적비, 탄금대비,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영의정 김지순 묘, 탄금대기비, 최근 발굴에서 철편이 출토되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탄금대 토성, 대흥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뜯었다고 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주변에는 금휴포(琴休浦), 금곡리(琴谷里), 금뇌리(琴腦里), 청금리(聽琴里) 등의 지명이 있어 우륵과의 관계를 짐작게 한다. 또한 충주에서는 악성 우륵 선생과 가야금의 고장으로서의 의미를 깊게 하기 위하여 1971년부터 우륵문화제를 열어 매년 10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977년 악성 우륵 선생 추모비를 탄금대에 세웠고 1995년에는 호암지변에 우륵당(于勒堂)을 건립하여 가야금의 전승 보급과 시립국악단 운영을 통한 전통 음악 보급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