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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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川許氏 |
영어의미역 | Yangcheon H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중청리 |
집필자 | 최일성 |
세거지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중청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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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500년대 |
성씨시조 | 허선문 |
입향시조 | 허초 |
[정의]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초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양천허씨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한다. 허선문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의 30세손으로 공암현(현 김포시)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어 거부가 된 인물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식량과 마필을 지원하여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공을 세워 공암촌주에 봉해지면서 공암현을 식읍으로 받게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공암을 본관으로 삼았다가 공암이 양천으로 개칭되면서 양천허씨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고려시대에 허재(許載) 등 명신 5명과 문과 급제자 17명을 배출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재상 5명, 공신 9명, 대제학 6명, 청백리 14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양천허씨 중에서 허초의 증손자 허적(許積)이 영의정을 역임해 가문을 빛냈고 그 외에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허잠(許潛), 이천도호부사를 역임한 허한(許僩), 호조정랑을 역임한 허치(許穉) 등이 있다.
[입향경위]
양천허씨 19세손 허초(許礎)가 중종 때 기묘사화로 인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고 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은둔한 이후 허초의 아들 허잠(許潛)이 현 소태면으로 이주하면서 후손들이 소태면 오량리와 중청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 기준 충주시에 거주하는 양천허씨는 334가구, 1,052명으로 조사되었다. 세거지인 소태면 오량리와 소태면 중청리에 거주하는 양천허씨는 1960년대에는 200여 가구였으나 2008년 현재 60여 가구이다.
[관련유적]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에 허한 부조묘, 허적 부조묘, 허한 묘, 허적 묘, 허잠 묘, 허잠 신도비가 있다. 이외에 「허한·허적 초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