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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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會科學硏究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중등학교 출신 학생들이 결성한 항일 단체.
[설립 목적]
사회과학연구회는 1931년 6월 대구 교외의 공동묘지에서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성학교, 교남학교, 휘문학교 등을 나온 학생들이 사회과학 연구를 통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결성한 학생운동 비밀결사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사회과학연구회는 대구고등보통학교 출신 김일식, 이경석, 김석구와 계성학교 출신 염필수 등이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한 네 명은 모두 1928년 대구학생비밀결사 사건과 대구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투쟁을 벌이다 퇴학당한 후 일본 교토에서 유학한 공통점이 있었다. 김일식, 김석구, 곽수범 등은 성봉중학교(聖峰中學校), 염필수는 동지사중학교(同志社中學校), 이경석은 풍산중학교를 거쳐 양양중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김일식은 1931년 7월 대구고등보통학교 출신의 한순, 1931년 8월 휘문고등보통학교 출신의 곽수범을 사회과학연구회에 가입시켰다.
사회과학연구회는 연구회 내에 김석구, 한순, 이삼문, 이경석 등으로 구성되는 제1클럽과 김일식, 염필수, 곽수범 등으로 구성되는 제2클럽을 설치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는 1931년 7월 ‘범태평양노동조합 일본 좌익노동운동에 대한 결의’를 윤독하면서 사회과학연구회의 진로와 전망을 모색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의 김일식과 이경석은 1931년 7월 초 이동우, 이재우, 백춘갑, 조홍기 등과 함께 대구 지역 학생의 공산주의화를 위하여 학생대표자회를 조직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의 김일식은 1931년 8월 김해 출신의 김홍직, 신간회 대구지회의 이우(李雨)[이명 이치용] 등과 함께 경상북도 지역의 공산주의화를 위하여 전위조직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의 김일식, 이경석은 김홍직과 함께 1931년 11월 하순 이삼문과 전명석을 만나 대구 지역 노동자의 공산주의화를 위하여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사회과학연구회는 사회과학연구회를 기반으로 하여 대구 지역 학생운동, 대구·경북 지역 좌익운동의 지도기관, 대구 지역 혁명적 노동운동으로 확대하면서 1930년대 민족운동을 실천하여 나갔다.
사회과학연구회는 프로과학연구소 제1지국의 반전 격문투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된 것을 계기로 해체되고, 구성원들은 1932년 12월 2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김일식은 징역 2년 6월, 이경석은 징역 1년 6월, 곽수범은 징역 1년, 한순·염필수·김석구 등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사회과학연구회는 1920년대 대구에서 학생 비밀결사 운동을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중심되어 1931년 6월 비합법적 운동노선 변화에 따라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를 꾀하는 활동을 벌이면서 1930년대 민족운동의 고양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