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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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安車氏 |
영어공식명칭 | YeonanCha Clan|YeonanCha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차효전을 시조로 하고, 차순라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차효전(車孝全)을 시조로 하는 연안차씨는 차순라(車順羅)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현풍읍 자모리 일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연안차씨는 고조선으로 망명한 중국인 사신갑(姒辛甲)의 후손 왕몽(王夢)이 기자 조선의 준왕(準王)에게 모함을 받아 숨어 살면서 전(田)·신(申)으로 성을 바꾸었다가 이어 차무일(車無一)로 하면서 시작된다. 차무일의 33세인 차승색(車承穡)은 헌덕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황해도 구월산으로 피신한 뒤 성을 류씨(柳氏)로 바꾸어 살았다. 이후 류씨의 6세인 류해(柳海)가 태조 왕건과 함께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우면서 삼한통합 벽상 2등 공신에 봉해지고, 차달(車達)이라는 호를 받았으며, 류차달의 큰 아들 류효전(柳孝全) 역시 통일에 필요한 군량미를 헌납하여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다. 이와 함께 연안에 식읍 천호(食邑千戶)를 하사받았으며, 태조는 원래 성인 차씨 성을 잇게 하였다. 둘째 아들인 류효금(柳孝金)은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성을 그대로 따르게 되면서 이후 차·류 양성(兩姓)으로 나누어졌다.
[입향 경위]
현풍읍 자모리 연안차씨 집성촌에는 차효전의 21세손이자 강렬공파 시조 차운혁(車云革)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달성군 논공읍 하리에 거주하던 차순라가 4명의 아들 차명상(車命尙)·차명용(車命容)·차극생(車克生)·차극상(車克常) 등을 데리고 자모리에 피난을 온 이후 정착한 것이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달성군의 연안차씨는 810명으로 확인되었다. 현풍읍 자모리 연안차씨 집성촌의 경우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마을 내 64가구 중 43가구가 연안차씨였으나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종중 묘원이 달성군 현풍읍 자모리 산 85번지에 있다.
[관련 유적]
달성 지역 연안차씨의 관련 유적으로는 현풍읍 자모리에 모원재(慕遠齋)가 있다. 이는 1924년 후손들이 차세미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