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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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社 參拜 反對 運動 |
영어공식명칭 | Anti-Shinto Shrine Worship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광욱 |
[정의]
일제 강점기에 거창 교회 주남고 목사 및 기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 참배에 저항한 사건.
[역사적 배경]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의 종교 활동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통제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기에 한편으로는 미션 스쿨의 종교 교육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인 설립을 용인해 주는 등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해 노골적인 반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한적 자유가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 전쟁의 확대를 통해 군국주의 성격을 강하게 띤 일본 제국주의는 종교의 자유까지도 탄압하였으며, ‘궁성 요배’와 ‘신사 참배’를 강요했다. 이러한 일본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해 소수의 목사와 성도들이 저항하고 반발한 것이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이다.
[경과]
거창에서는 거창읍에 위치한 거창 교회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거창 교회를 설립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주남고는 거창 지역 3·1 만세 운동의 주역이었으며, 이후에도 거창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축으로 활동했다. 주남고는 독립운동으로 인해 옥고를 치른 뒤 늦게 평양 신학교에 가서 신학 공부를 할 수 있었고, 1930년 3월에 평양 신학교를 졸업한 뒤 거창 교회의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1938년 조선에서의 신사 참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주남고 목사는 이를 반대하는 신앙 노선을 뚜렷이 보였다. 주남고 목사는 신사 참배가 기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임을 설교에서 누누히 강조했다. 주남고 목사가 눈의 가시같은 존재가 되자 일제는 교회에 압력을 넣어 목사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주남고 목사는 무임 목사로 경상남도 지역 순회 설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남고는 함양, 진주, 산청 등의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서 신사 참배 반대를 결의했으며, 경상남도의 여러 교회에서 신사 참배 반대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해 오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결과]
일본은 주남고 목사에게 국체 변혁의 혐의를 걸어 5년형을 선도했다. 주남고 목사는 옥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고’에서 ‘남선’으로 바꾸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다시 거창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으며, 1946년에는 고려 신학교를 세우고 초대 대표 이사가 되었다. 한국 전쟁 때 고난을 겪다가 1951년 3월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의의와 평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은 기독교 교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종교 운동이자 민족 운동의 일환이다. 중심 인물인 주남고 목사는 만세 운동의 주역이면서 종교인으로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