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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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十總選擧 |
영어공식명칭 | 5·10 Elec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정 |
[정의]
1948년 5월 10일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실시된 제1대 국회 의원 총선거.
[개설]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총선거에 거창 지역에서는 지역 유지 2명, 기독교계 1명, 독립운동가 출신 1명이 입후보했고 지역 유지 표현태가 제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역사적 배경]
1948년 3월 1일, 유엔의 남한 단독 선거 발표가 있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는 이승만의 독립 촉성 국민회와 한국 민주당은 적극 지지하며 참여하였지만, 남조선 노동당과 김구와 김규식 등 민족주의 세력은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선거 반대 세력과 지지 세력 간에 유혈 충돌이 격렬해졌으며 전국적으로 시위, 습격 등이 일어났다. 거창에서도 5월 8일 단독 선거 반대 세력이 위천 지서를 습격하였고 이에 다음날 경찰과 우익 단체들이 주민들을 집단 구타하고 위천면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과]
거창 지역에서는 표현태, 신중목, 김상수, 박달준 4명이 국회 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45세 표현태는 일제 강점기 월천면장 출신의 지역 유지로 민족 청년단 거창군 이사장이자 독립 촉성 국민회 소속이었다. 47세 신중목은 일제 강점기 주류업에 종사하면서 각종 공직을 지냈고, 미군정에 의해 군수에 임명되었으며, 미군정이 조직한 남조선 대표 입법 의회 의원으로 역시 독립 촉성 국민회 소속이었다. 57세 김상수는 지역에서 30년간 한약상을 경영하였던 기독교 장로였다. 55세 박달준은 해인사 승려로 3·1 운동, 만주에서 독립군,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이로써 거창에서는 지역 유지 2명, 기독교계 1명, 독립운동가 1명이 입후보했다.
[결과]
표현태가 17,146표를 얻어 15,743표를 얻은 신중목을 누르고 거창 지역에서 제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의의와 평가]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였지만, 선거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남한만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남북 분단이 기정사실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