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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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民保導聯盟 事件 |
영어공식명칭 | Protection and Guidance League, Geochang-gun Branch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정 |
발단 시기/일시 | 1949년 11월 20일 - 국민보도연맹 경상남도 연맹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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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시기/일시 | 1949년 12월 2일 - 거창 지역에서 271명이 국민보도연맹에 자수하거나 전향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7월 - 경찰이 국민보도연맹원 구금 |
전개 시기/일시 | 1950년 7월 21일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마령재에서 경찰에 의한 국민 보도 연맹원 1차 학살 |
종결 시기/일시 | 1950년 7월 27일 -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권빈재에서 경찰에 의한 국민 보도 연맹원 2차 학살 |
발생|시작 장소 | 마령재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
종결 장소 | 권빈재 -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
성격 | 한국 전쟁 시기 예비 검속으로 거창 지역 국민 보도 연맹원 학살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국민보도연맹|거창 경찰서 |
[정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거창 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예비 검속으로 지역 보도 연맹원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
[개설]
1949년 좌익 경력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계도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이 조직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아직 인민군이 내려오기 전인 1950년 7월 거창 지역 연맹원들은 예비 검속으로 거창 경찰서 사찰계 경찰들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마령재와 권빈재에서 2차에 걸쳐 36명이 학살되었다.
[역사적 배경]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경력자들 중에서 ‘전향자를 계몽하고 지도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인다’는 목적으로 1949년 4월 20일 결성되었다. 내무부 장관이 총재를 맡고 법무부 차관, 내무부 차관, 대검찰청 차장이 부총재를 맡은 정부 주도 하에 만들어진 관변 단체였다. 1949년 9월 20일부터 지방 지부 조직이 만들어졌고, 경상남도 연맹은 11월 20일 부산에서 선포 대회를 열었다. 이후 산하 지역에 지부를 결성했다. 거창 인민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신학우가 간사장에 선출되었다.
[경과]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10월 2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자수 주간을 설정하고 대대적인 자수와 전향 작업을 진행했다. 1949년 12월 2일 경상남도 경찰국 사찰과에서 발표한 군별 자수자 현황에 따르면 거창 경찰서는 271명이 자수 전향했다. 증언에 따르면 좌익 활동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경찰이나 우익 단체 인사와 사적인 갈등 관계를 가진 자도 있었고 경찰이 임의로 판단해 강제로 가입시킨 경우도 있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거창 국민보도연맹원들은 거창 경찰서 사찰계 경찰들에게 소집되거나 연행되어 거창 경찰서 유치장, 상업 은행 창고[현 국민 은행 거창 지점], 양조장[현 농협 중앙회 거창 지회 맞은편] 등에 구금되었다. 보도 연맹원들은 1차로 1950년 7월 21일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마령재에서, 2차로 7월 27일 합천군 봉산면 권빈재에서 경찰들에게 집단 사살되었다.
[결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신원이 확인된 거창 지역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는 총 36명이고, 대부분 경상남도 거창군에 거주한 20대에서 40대 남성이었다. 학살자 중 신원면 사람이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유족들은 이들은 신원면의 우익 단체 인사들이 사적 감정으로 무고한 면민들이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거창 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국민보도연맹원 및 예비 검속자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비록 전시였지만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비무장 민간인을 국가 권력인 경찰이 예비 검속하여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이자 국가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