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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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院里 |
영어음역 | Sangw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앞에 있던 관용 숙소인 상좌원(上佐院) 위에 있는 마을이므로 상원(上院)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하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원터[院基]·마드리·무티실이 통합되어 김천군 석현면 상원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 김천군 구성면 상원리가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구성면 상원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앞으로 감천이 가로지르고 하천 변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 뒤로 매봉산이 솟아 있어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형국이다. 마을 중앙에 있었다는 안샘[內泉]이 연꽃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매봉산 조산골은 조선 8대 명당으로 손꼽혀 왔다. 이곳에 있는 연성부원군 이말정(李末丁)의 묘는 통상 있는 역장(逆葬)인데 이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는 원군을 보내면서 조선 팔도의 명당을 훼손하여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막아 볼 요량으로 명나라 군사들이 건널 압록강 다리를 관(棺)으로 이어 만들라는 요구를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전국의 묘를 파헤쳐 관을 공출해 갔는데 이말정의 묘는 명당이기는 하나 역장이라 훼손되는 수난을 면했다고 한다.
[현황]
상원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3.21㎢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88세대에 147명(남자 75명, 여자 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상원리 한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이말정의 손자이자 연안군 이숙기(李琡琦)의 차남인 진사 이세즉(李世則)이 정착해 마을을 개척한 이래 대대로 연안 이씨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최근 양파를 집단적으로 재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인 방초정(芳草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인 『가례증해(家禮增解)』 판목이 있다.
방초정은 조선 선조 때 이정복(李廷馥)이 조상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2층 누각으로 자신의 호(號)를 누각 이름으로 삼았다. 1736년 감천 범람으로 유실되었고 1788년 후손 이의조(李宜朝)가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었다. 조선 시대 정자와 연못 조경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이다. 『가례증해』는 이의조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자가례』를 보충하고 해설한 책이다. 『가례증해』를 판각한 『가례증해』 판목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관혼상제 증해판이며, 목각 기법이 매우 뛰어나다.
자연 마을로는 원터·마드리·수도곡(修道谷)이 있다. 원터는 과거 상좌원이 있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마드리는 상좌원에 머물던 길손들이 말[馬]을 매어 두고 여물을 먹이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두릉(杜陵)·마두리(馬斗里)라고도 한다. 수도곡은 옛날 수두사(水豆寺)에서 불도를 닦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무티실이라고도 한다.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김산현 관할로 나라에서 필요한 공물을 생산하던 수다곡소(水多谷所)가 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