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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304
한자 館基里
영어음역 Gwangi-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순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2.92㎢
가구수 292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 여) 619명(남자 312명, 여자 307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조선 말까지 장곡역(長谷驛)이 있었고 관사로 이용된 두의곡원(頭衣谷院)이 있어 관터 또는 관기(館基)라 하였다. 향지(鄕誌)에 따르면 장곡역은 공물을 임시 보관하는 창고가 2칸, 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경작하던 전답이 31결[약 280,993㎡], 중간 크기의 말이 두 필, 작은 말이 두 필, 역리(驛吏)가 25명 있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지례군 상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관터·장곡(長谷)·호미(虎尾)·아랫장터·웃장터가 통합되어 김천군 대덕면 관기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대덕면 관기리로 개칭되었고, 1960년 관기1리·관기2리·관기3리로 나누어졌다. 1995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화전천과 덕산천이 합류하여 감천의 상류인 대덕천을 이루는 지점에 자리 잡아 평야가 많다. 덕산천과 화전천이 합류하는 지점 사이 있는 수정봉(水晶峰)은 예부터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으로 꼽힌다. 서산 정씨 집안에서 초상이 나서 땅을 팠더니 수정이 있어 이를 세우자 학이 날아오르려 하므로 다시 수정을 덮었는데 이때 학의 다리가 돌에 끼어 학이 다쳤고 이후부터 집안에 흉흉한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현황]

관기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2.92㎢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92세대에 619명(남자 312명, 여자 30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쪽으로 연화리, 남쪽으로 화전리와 이웃하고 있다. 관기1리·관기2리·관기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연안 이씨·김녕 김씨·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국도 30호선국도 3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 유적으로 연안 이씨 문중 재실인 사모재(思慕齋), 밀양 박씨 문중 재실인 영모재(永慕齋), 장곡역 터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관터·웃장터·아랫장터·장곡·호미 등이 있다. 장터는 대덕지서에서 대덕중학교 사이에 시장이 서서 붙인 이름이다. 1936년 수해 때 하천이 범람해 매몰된 후 관기2리로 시장을 옮겼고 원래 장이 있던 마을을 웃장터, 뒤에 옮긴 마을을 아랫장터라 하였다. 시장과 대덕면사무소 이전을 두고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대립할 때 줄다리기를 해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장곡은 마을 뒷산인 송시봉[일명 송수봉] 골짜기가 워낙 깊어 붙인 이름이다. 아랫장터는 대덕면 소재지로 1930년대까지만 해도 길손들을 상대하던 주막이 몇 채 있을 뿐이었으나 1936년 수해 때 관터에 서던 시장이 매몰되자 주막 일대에 5일장이 서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국도 3호선국도 30호선이 놓이면서 면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호미는 마을 뒷산인 호미산이 풍수지리상 호랑이가 길게 누워 있는 와호형(臥虎形)이고 마을이 호랑이 꼬리 부분에 자리 잡아 붙인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예부터 호미금계(虎尾禁鷄), 즉 호미에는 닭을 금한다는 이야기가 불문율처럼 전해 온다. 산 아랫마을에서 닭 울음소리가 나면 새벽이 온 줄 알고 호랑이가 도망을 쳐서 마을의 운세가 쇠퇴하므로 닭을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호미산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정성은 각별하여 산에 산소를 들이지 못하도록 함은 물론 산중턱에 솟은 바위를 장닭바위라 하고 바위가 무너지지 않게 덧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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