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707
한자 金寧金氏
영어음역 Gimnyeong Gimssi
영어의미역 Gimnyeong G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금라리
집필자 송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조선 후기[선조]
입향 조선 후기[선조]
입향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금라리 지도보기
입향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거리 지도보기
입향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입향지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황계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금라리
성씨 시조 김알지
입향 시조 김이환

[정의]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김이환(金爾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김녕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며 본관을 김해(金海)로 써오다가 조선 헌종경순왕(敬順王)의 8대손인 김시흥(金時興)의 후손들이 본관을 김녕(金寧)으로 고쳤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동북병마사로 있었으며, 삼별초의 난을 진입하는 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입향 경위]

김천 지역의 김녕김씨는 8세(世) 김지(金智)로부터 비롯된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9세 김문기(金文起)로부터 시작되는 충의공파(忠毅公派)이다. 대사성공파는 대덕면 덕산리에, 감사공파(監司公派)는 부항면 신옥리에 산다. 충의공파로 속하는 14세 김이환이 조선 선조 때 예천에서 감문면 금라리로 입향한 이래 대대로 금라리에 세거지를 형성했다. 뒤이어 옥천에서 구성면 상거리로 김명지(金明之)가 이주하고 15세 김희복(金希福)이 지례면, 16세 김응래(金應來)가 개령면 황계리로 입향했다.

[현황]

김녕김씨 충의공파 후손인 김병주에 의하면 2010년 2월 말 현재 대사성공파 후손은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에 20가구, 감사공파 후손은 부항면 신옥리에 7가구가 산다. 또 충의공파 후손은 대덕면 조룡리에 40가구, 관기리에 11가구, 문의리에 5가구, 구성면 상거리에 33가구, 개령면 황계리에 68가구, 감천면 용호리에 31가구, 감문면 금라리에 54가구, 부항면 대야리에 11가구, 충민공파 후손은 감문면 광천리에 12가구가 각각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김녕김씨와 관련된 유적은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에 있는 상덕재(尙德齋)와 경앙재(景仰齋), 구성면 상거리에 있는 승유재(承裕齋), 감문면 금라리에 있는 추원재(追遠齋), 부항면 대야리에 있는 갈산재(葛山齋)이다. 또한 대덕면 조룡리에는 1802년(순조 2)에 창건된 섬계서원(剡溪書院)[경상북도 기념물 제180호]과 문중 소유의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0호]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