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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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甑山示威企圖 |
영어음역 | Jeungsan Siwi Gido |
영어의미역 | Jeungsan Demonstration Attemp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발생|시작 | 1919년 4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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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 1919년 5월 2일 |
발생|시작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종결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이봉정|김도훈|백성구|최상철|김동둰 |
[정의]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필요성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에 따라 1919년에 접어들면서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3월 1일을 기해 전 민족적인 만세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김천은 일제의 한국 침략의 상징이 된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만들어진 신흥 도시로 경북 내륙의 주요 산물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대구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의 파이프 역할을 하는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여 만세 독립운동이 발발하는 주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경과]
경상북도 김천군 증산면에 있는 쌍계사의 승려 이봉정·김도훈·백성구 등은 서로 협의하여 1919년 4월 5일 밤 증산면 평촌리 뒷산에서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군중 동원을 위해 증산면 유성리 동장 최상철을 찾아가 시위 계획을 알리면서 마을 사람들의 동원을 부탁하였고, 또한 평촌리 동장 김동원을 찾아가 독립 선언서를 전해 주면서 마을 사람들의 동원을 부탁하였다.
[결과]
시위 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위 계획이 일본 경찰에 알려져 주도자들이 붙잡히면서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시위의 주도자 이봉정·김도원은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1919년 5월 2일에 열린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재판에서 징역 10월을 언도받았다.
[의의와 평가]
증산 시위 기도는 불교계 승려가 주도한 만세 독립운동으로, 민족 독립의 필요성을 확인케 하였고, 이후 김천에서 만세 독립운동이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아가 전 민족적 항일 운동인 3·1운동은 임시 정부의 수립을 가능케 했으며, 공화정을 정착시키는 데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