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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봉 만세 시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31
한자 萬千峰萬歲示威
영어음역 Mancheonbong Manse Siwi
영어의미역 Mancheonbong Independence Demonstr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종결 1919년 4월 3일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종결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성격 독립운동
관련 인물/단체 이근욱|이덕필|김병철|조도붕

[정의]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필요성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에 따라 1919년에 접어들면서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3월 1일을 기해 전 민족적인 만세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김천은 일제의 한국 침략의 상징이 된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만들어진 신흥 도시로 경북 내륙의 주요 산물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대구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의 파이프 역할을 하는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여 만세 독립운동이 발발하는 주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경과]

1919년 4월 1일 정오 무렵 지역민들이 만천봉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마을 주민 이근욱은 어모면 진목동의 편강렬(片康烈)로부터 태극기를 얻어와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었다. 시위 현장에서 지역 주민 이덕필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민족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김병철은 일제를 성토하였다. 이어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던 조도붕은 모아놓은 청솔가지에 불을 지펴 독립의 의지를 나타냈다. 시위에 참여한 지역민들은 만세 독립을 연이어 외쳤다. 만천봉 만세 시위는 3일 동안 계속되었다.

[결과]

만천봉 만세 시위 가담자들은 모두 일본 경찰에 의해 추풍령 경찰주재소로 연행되었고, 이중 16명이 강제로 삭발당하였다. 연행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무지의 소치라 하여 다음날 풀려났다.

[의의와 평가]

만천봉 만세 시위는 민족 독립의 필요성을 확인케 하였고, 이후 김천에서 만세 독립운동이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아가 전 민족적 항일 운동인 3·1운동은 임시 정부의 수립을 가능케 했으며, 공화정을 정착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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