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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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共産黨金泉-再建協義會事件 |
영어음역 | Joseon Gongsangdang Gimcheon Geurup Jaegeon Hyeobuihoe Sageon |
영어의미역 | The Korean Communist Party Gimcheon Group Reconstruction Union Incid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33년 4월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가 조직된 사건.
[역사적 배경]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1931년 2월 임종업(林鍾業), 조관제, 나정운, 백락도(白樂道) 등이 적색청년동맹, 적색노동조합, 적색농민조합 등을 조직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좌절된 뒤 1933년 4월 이병일(李秉一), 백락도, 나정운 등이 김천 지역 사회 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 만든 비밀 결사였다.
[경과]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1931년 독서회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독서회는 1933년 2월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재결성되면서 확대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 과정을 거쳐 1933년 4월에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가 조직되었다.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밑으로 노동조합, 농민 조합, 반제 동맹을 설치하였다. 또 총책임 겸 농민부는 백낙도가, 노동·학생부는 이병일이, 노동청년·여성부는 나정운이 각각 맡았다.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의 운영 방식은 상향식이며, 운동과 구성원 확보는 신중하고 편중되지 않도록 하며, 총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모임을 열 것 등을 정했다.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노동자·농민의 경제 이익을 옹호하여 대중을 혁명적 투쟁의 장으로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구성원들은 김천의 무연탄 공장, 금정 주조 공장, 우피 건조 공장 등에 취업하였다. 또한 농민 운동을 벌이기 위해 농민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33년 6월 소비조합위원회를 구성하여 당시 김천소비조합을 장악하였다. 또 일반 대중과 학생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계(契)와 강사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김천사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과학연구회를 만들어 반제 동맹으로 확대시키고자 하였다.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1935년 4월 무렵 서울에서 전국적 차원의 당 건설 조직인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와 연계하여 사회 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결과]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와 연계해 활동을 전개하던 중 구성원 중 이병일과 김시동이 일본 경찰에 검거되는 것을 계기로 좌절되었다. 일본은 사건 관련 혐의로 300여 명을 검거하였으며, 수용 시설이 부족해 인근 성주, 왜관, 선산, 상주 등에 분산시킬 정도였다. 일본 경찰은 8개월간의 조사를 마치고 이들을 1935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넘겼다. 이 가운데 김천 출신 25명을 포함하여 모두 62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