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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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泉直指寺大雄殿 |
영어공식명칭 | The Main Hall of Jikji Temple in Gimcheon |
영어음역 | Gimcheon Jikjisa Daeungjeon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주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9월 3일 -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물 제157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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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물 재지정 |
개축|증축 | 1602년 |
개축|증축 | 1735년 |
건립 | 418년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성격 | 불전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직지사 |
관리자 | 직지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위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 황악산 중턱 직지사 경내에 위치한다. 직지사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 좌측의 계곡을 끼고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만세루(萬歲樓)와 일직선상에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당(禪堂)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2개의 3층탑이 놓여 있어 2탑식 중정형 가람 배치 형식을 띠고 있다.
[변천]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신라 시대인 418년(눌지왕 2)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전소되었으나 조선 시대인 1602년(선조 35)에 사승(寺僧), 인수(仁守), 명례(明禮) 등에 의하여 중창되었고 현재의 대웅전은 1735년(영조 11)에 주지 수변화상, 전 주지 설운 종익 그리고 태감화상을 비롯하여 산중 대중의 협력과 시주로 중건되었다.
이때 참가한 명단은 중창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상대목 동래 운수사의 치백과 도목수 설인을 비롯하여 목수 20여 명과 야장, 개와공, 도감, 그리고 화사, 총찰도감, 도와, 도감 등 50여 명의 산중 대중과 900여 명의 시주가 참가하였다. 중창 상량문은 1969~1970년에 연목 교체 및 기와를 번와할 때 주지 녹원화상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는데 1973년 4월 10일부터 1975년 6월 20일까지 대웅전의 주위 석축 및 축대를 새로 조성하였고, 1979년 10월 25일부터 1980년 1월 14일까지 녹원화상에 의하여 재차 연목 및 기와의 번와가 이루어졌다. 1980년 8월에는 부분적으로 고색 금단청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단은 가장자리를 화강석으로 돌리고 바닥에 전을 깔았다. 기단 위에는 큰 막돌 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워 흙벽을 쳤으며 네 모서리에 지붕 추녀를 받는 활주(活柱)를 세웠다. 공포 양식은 다포 형식으로 간포를 2개씩 두고 기둥 위에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의 공포(栱包)를 결조(結造)하였으며 정면, 측면과 배면의 공포 구성이 다르다.
기둥 사이의 평방(平枋) 위에는 문포(問包)를 2조씩 배치하였다. 계단 오른쪽은 용머리 조각과 호형의 부재를 사용하였며 형태와 결구법이 특이하다. 건물 전체 16칸 가운데 4칸만이 벽체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창호로 되어 있다. 정면과 배면, 좌·우 측면의 간살은 어간이 협간이나 툇간보다 조금 넓고 정면 5칸에는 같은 형식의 높은 두짝 굽널세살문을 달고 좌·우 측면 건물 앞쪽 칸에는 외짝 굽널세살문을 달았다.
배면 5칸에도 모두 굽널세살문을 달았는데 정면보다 키가 낮고 어간·툇간·협간 별 여닫는 방법이 다르다. 어간에는 외여닫이 문 세 짝을 나란히 달고 협간과 툇간에는 각각 쌍여닫이와 1분합여닫이문을 달았다. 외부 살미의 모습이 각 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정면은 3개의 앙서와 1개의 수서로, 좌·우 측면은 4개의 앙서로 짜 맞추었다.
배면은 어간과 협간에는 살미 밑면을 수평으로 하고 윗면을 빗깎은 4개로 짜 맞추고, 툇간에는 좌·우 측면과 같은 살미로 꾸몄다. 정면 앙서의 윗면에는 연화·연봉이 조각되어 있고 수서 위에는 용두각한 장식 부재가 놓여 있다. 정면 공포의 내부 운궁 중에서 보를 받치고 있는 운궁 맨 윗부분은 동물 머리로 조각했다. 대량에는 운공 상부에서 뻗어 오른 측면보가 걸쳐 있고 천장은 우물반자로 꾸며져 있다.
외부는 금단청과 금모로 단청, 내부는 모로 단청으로 하였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용마루 양단은 취두로 장식되어 있다. 대웅전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앞쪽에 2개, 뒤쪽에 4개의 고주를 두었는데 전면 고주는 생략하여 예불 공간을 넓게 한 개방형 불전 형식이며 뒤쪽 고주 사이에는 불벽을 설치하고 그 앞으로 불단을 두어 약사, 석가, 아미타불의 삼세불상(三世佛像)과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이들 불화는 세로 6m의 긴 화폭에 비단에 채색되어 있는데 1744년(영조 20)에 제작된 것이다. 왼쪽 약사불화는 중앙에 약합(藥盒)을 든 약사여래가 앉아 있고, 그 주위를 일광(日光)·월광보살(月光菩薩), 8대보살, 사천왕(四天王), 12신장(十二神將) 등이 에워싸고 있다.
중앙의 석가후불탱화(釋迦後拂幀畵)도 석가여래와 문수(文殊)·보현(普賢) 등의 보살과 범천(梵天)·제석천(帝釋天) 및 십대제자(十大弟子) 등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의 아미타탱화 역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觀音)·세지(勢至) 등 보살 및 신장상(神將像) 등이 주위를 둘러싼 구도이다.
이 불화들은 모두 짜임새 있는 구성과 불·보살상의 뛰어난 묘사력, 정교한 장식 표현 및 안정감 있는 색감 등이 돋보여 조선 시대 후기 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불벽 상부에는 달동자를 용두와 연화로 장식한 닫잡이 꾸며져 있다. 3칸 후불벽 뒤편에 각기 문을 내어 불단 내부를 수납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라 시대 김천 직지사 대웅전의 규모에 대해서는 미상이나 고려 이후 조선 초기, 적어도 정종 대까지는 2층 5간의 특수한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사적기에 대웅대광명전이라 하였는데 명칭부터 특이하여 당시에는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을 동시에 봉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황]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1985년 12월 30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5호로 지정되었다가, 건물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9월 3일 보물 제1576호로 다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직후 재건된 조선 후기[18세기] 불전들의 모습과 내·외부 벽화와 불단의 아름답고 뛰어난 기법을 보여준다. 가구의 구성 및 부재의 표현 기법도 조선 후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내 삼세불상(三世佛像)과 후불탱화은 조선 후기 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성이 짜임새 있고 불·보살상들에 대한 묘사와 장식 표현이 정교하며 색감이 뛰어나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