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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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紙金泥金剛-普門發願 |
영어공식명칭 | The Book of Buddhist |
영어음역 | Baekjigeumnigeumgang Mit Bomunbarwon |
영어의미역 | A Book Transcribing Many Sutras Made in 1371 (the 2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ongmin) in the Goryeo Dynasty by Buddhist Nuns Named Myoji and Myosu, Written in Gold Ink. |
이칭/별칭 | 『백지금니금강보문발원합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남권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2월 22일 - 백지금니 금강 및 보문발원 보물 제130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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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백지금니 금강 및 보문발원 보물 재지정 |
편찬 | 1371년 |
소장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성격 | 불경 |
권책 | 1첩 |
행자 | 7행 17자 |
규격 | 9.2㎝[가로]|23.2㎝[세로]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후기 불서.
[개설]
『금강경(金剛經)』의 한역본은 402년 요진(姚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것 외에 6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에는 입장(入藏)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유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강경』의 해석과 이해를 위해서 인도의 무착(無着)은 18주위(十八住位)로 과판(科判)했고, 천친(天親)은 37단의(三十七斷疑)로, 중국 양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는 32분(三十二分)으로 나누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구마라집 한역의 『금강경』은 일반적으로 소명태자의 분장 형식을 따르고 있다. 삼국 시대 불교 유입 초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지눌이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법(入法)을 위해서 반드시 『금강경』을 읽게 한 뒤부터 널리 유통되었다. 백지금니 금강(白紙金泥金剛) 및 보문발원(普門發願)은 2000년 12월 22일 보물 제130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본래 『백지금니금강보문발원합부(白紙金泥金剛普門發願合部)』로 불리었다.
[편찬/간행 경위]
백지금니 금강 및 보문발원은 1371년(공민왕 20) 비구니 묘지(妙智)와 묘수(妙殊)의 시주(施主)로 사성(寫成)되었다.
[형태/서지]
절첩본이며, 서체는 안진경체이다. 표지는 감지에 금은니(金銀泥)로 그린 보상화문으로 장식하였다. 책머리에는 백지에 금니로 그린 「여래삼존도」와 「수월관음도」 등 2폭의 변상도가 있다. 크기는 가로 9.2㎝, 세로 23.2㎝이다. 한 면은 7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행은 17자이다. 상하에 금니(金泥) 단선(單線)이 있는데, 금니 단선 사이의 거리는 17.6㎝이다.
[구성/내용]
권수에는 일반적인 경의 변상(變相)과는 구도가 다른 협시보살을 거느린 불상과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이 각각 금니로 묘사되어 있다. 이어 금강계청(金剛啓請)과 발원문(發願文)이 있으며,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제25(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第二十五)』, 『영가대사발원문(永嘉大師發願文)』 순으로 백지에 금니로 필사되어 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석가가 수보리의 질문에 따라 반야 사상을 설법한 경전이다. 『묘법연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세음보살을 통해 온갖 재앙으로부터 구제받는 내용과 관세음보살의 32가지 응신(應身)이 서술된 관음 신앙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발원문은 당의 영가현각(永嘉玄覺)의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에 수록된 내용을 기록하였다.
권말에 ‘홍무4년신해7월일지(洪武四年辛亥七月日誌), 시주비구니묘지(施主比丘尼妙智), 동원비구니묘수(同願比丘尼妙殊)’ 등의 기록이 있어 시주자와 사성(寫成)한 연대를 알 수 있다. 또 연호의 ‘무(武)’ 자가 혜종의 이름이기 때문에 내려 긋는 획을 생략하여 피휘(避諱)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려 후기의 사경(寫經)으로 당시 불교 신앙의 단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