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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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卷 |
영어음역 | Han Gwon |
이칭/별칭 | 가서(可舒),유선(儒仙),문절(文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병우 |
출생 | 13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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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408년 |
활동 | 1410년 |
활동 | 1411년 |
활동 | 1414년 |
활동 | 1414년 |
몰년 | 1448년 |
추모 | 1462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구성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일대 |
묘소|단소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희곡리 산144번지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곡산(谷山) |
대표 관직 | 소산군사 |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가서(可舒), 호는 유선(儒仙). 증조할아버지는 직학사 한진(韓瑨)이고, 할아버지는 관찰사 한방좌(韓邦佐)이며, 아버지는 개성유후 평절공(平節公) 한옹(韓雍)이다. 외할아버지는 배희현(裵希賢)이고, 장인은 김용초(金用超)이다. 부인은 의성 김씨이다. 한권의 이름은 왕조 실록에는 ‘권(卷)’으로 되어 있고,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권(淃)’으로 명기되어 있어 혼돈하기 쉽다.
[활동 사항]
한권(韓卷)[1386~1448]은 김천 지례현[현 김천시 지례면·구성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일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가학으로 학문에 입문하였다. 경서를 읽으매 총민함이 드러났으며 부친의 뜻에 따라 경학 공부에 몰두하였다. 배우면 통하지 않음이 없고 특히 『춘추(春秋)』에 능통하였다.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명성을 얻었다.
1410년(태종 10) 승문원이 처음으로 설치되어 경학에 해박한 인재를 선발할 때 초대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때 태종은 한권에게 사대(事大)와 전문(典文)을 맡겼다. 한권의 학문이 해박하고 총명함이 남달라 당대의 고관과 유자(儒者)들이 유선이라 칭송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호가 되었다. 1411년(태종 11)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학문이 날로 진취하여 주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사간원우정언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이양우(李良祐)가 이방간(李芳幹)과 더불어 밀통하였다고 상소하여 국문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자 사직하였다. 한권은 사직 상소에서 특유의 춘추사관(春秋史觀)을 드러냈다. 신하 된 죄가 불충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이 불충은 두 마음을 품는 데에서 나오며 그런 자들은 당(黨)을 지어 난신(亂臣)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춘추의 법으로 난신을 없애고 당 짓는 것을 다스려야 악인들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것은 한권이 새로운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세조는 한권을 황간에 안치시켰다가 곧바로 경외종편(京外從便)을 명하였다. 이후 홍문관교리를 거쳐 함안군수 시절에는 민폐를 덜어 주고 생업을 북돋아 고을 사람들이 한권의 이임(離任)을 막아서기도 하였다.
한권의 사람됨은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았고, 무예와 궁술에도 조예가 깊어 문무를 겸비한 진정한 선비였다. 평안도안무사가 되었으며, 만년에는 소산군사(所山郡事)가 되었다. 조야에 신망을 받았으나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경서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소산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유유자적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학문과 저술]
『유선선생문집(儒仙先生文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김천시 부항면 희곡리 산144번지에 부인 의성 김씨 묘와 함께 있다.
[상훈과 추모]
1462년(세조 8) 원종공신 3등에 추록(追錄)되고 문절(文節)이란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