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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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應期 |
영어음역 | Gwon Eunggi |
이칭/별칭 | 회숙(會叔),은재(隱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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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
성격 | 효자|선비 |
성별 | 남 |
본관 | 안동(安東)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이자 선비.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회숙(會叔), 호는 은재(隱齋). 안동 권씨 문경공 권진(權軫)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권흠(權欽)이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권응성(權應聖)[?~1592]이고, 아들은 권기(權耆)이다. 권기는 예빈시첨정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권응기(權應期)는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형 권응성에게 “충효는 한가지라고 하였으니 형님은 창의보국하고 저는 가문을 보존하리다.”라고 말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청송으로 피란을 갔다. 왜적에게 붙잡히자 “부모가 없는 자식은 없다. 너희에게 늙은 부모가 있어 나처럼 붙잡혔다면 어찌할 것이냐?”라고 묻자, 왜적들이 감동하여 놓아 주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충효지문(忠孝之門)이라고 일컬었다. 권응기는 『김산향안(金山鄕案)』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가 죽은 뒤 문집(文集)이 만들어졌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재궁골에 있다. 묘갈은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