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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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煥玉 |
영어음역 | Yeo Hwan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호상 |
출생 | 18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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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920년대 |
활동 | 1926년 |
활동 | 1927년 3월 |
활동 | 1927년 6월 18일 |
활동 | 1932년 |
특기 사항 | 2000년 9월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김천 |
활동지 | 경상북도 김천 |
성격 | 독립운동가|교육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명강습소 개설|신간회 김천지회 지회장|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지부 위원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교육가
[활동 사항]
여환옥(呂煥玉)은 189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에서 성산 여씨 여승동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1920년대 여환옥은 김천의 해산물 및 농산물 등의 위탁 판매를 하던 김천흥업사의 감사직을 맡고 있었는데, 지역의 교육열이 고조되자 자신의 본가에 광명강습소를 개설하여 지역 청소년들에게 신교육을 받게 하였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요인으로서 자신의 가옥과 토지를 담보로 동양척식주식회사로부터 대부를 받는 등의 방법을 통해 군자금을 조성한 후 상해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1926년 금릉청년회가 주도하여 만든 교육 기관인 금릉학원이 재정난에 빠지자 여환옥은 금릉학원 유지회에 가담하여 이사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7년 3월 김천 지역 고등보통학교 설립을 위한 발기인준비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김천에서는 사회주의 세력 내부의 통합이 추진되면서 단일 청년 동맹이 결성되었고, 이들에 의해 신간회 김천지회가 설립되었다. 6월 18일 총회에서 여환옥은 지회장에 선출되었다. 설립 과정에서 여환옥은 경비를 부담하고, 당시 옥중에 있던 김준연·여운형 등 애국지사들에 대한 활발한 지원 활동도 하였다. 1932년에는 김천고등보통학교에 1,000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여환옥은 해방 직후인 8월 18일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 김천지방지부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50년 3월 정부의 농지 개혁 과정에서 농지 이전에 대한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농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여환옥의 생가는 2000년 9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8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