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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069
한자 市場
영어음역 Sijang
영어의미역 Market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준웅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개설]

역사적으로 볼 때 시장이란 교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였는데, 예부터 이를 장시(場市)·장(場)·장문(場門)이라고 불렀다. 생활에 필요한 잉여 물자를 서로 교환하는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주로 다른 상품이나 생산 조건이 다른 지역의 물품을 증여나 조공(朝貢) 등의 형식을 통해 교환하면서 비롯되었다.

시장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시장이 서는 날짜가 연 1회, 월 1회, 10일에 1회, 주 1회, 5일에 1회 등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정기 시장과 상설 시장으로 구분된다. 근래에는 현대화의 물결과 함께 전통적인 정기 시장의 수와 규모는 줄고 상설 시장이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다.

한편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는 범위를 상권이라고 하는 데 상권은 교통, 상품의 종류, 시장의 크기 등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된다. 또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각종 정보도 교환하는 일종의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기능을 해 오고 있다. 따라서 지역의 시장 발달을 고찰해 보면 지역 공동체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된다.

[변천]

김천시장은 지금의 김천시 용호동 일대에서 열렸다. 1922년 감천 제방이 축조되기 전까지는 시장의 대부분은 백사장이었고 황금동교회 앞을 흐르는 개울이 감천으로 유입되는 지점인 지금의 철교 부근에 삼각주를 이룬 높은 지대가 형성되었는데 이곳이 김천시장의 중심지로 ‘용우머리’라고 하였다. 김천시장 서쪽은 늪지로 1905년 일본인들이 이곳에 처음 들어와 정착하면서 늪지를 매립하여 시장이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감호동도 옛날의 김천시장이 김천교 부근까지 감천 변을 따라 뻗쳤으나, 김천교 북은 1922년 감천 제방이 축조됨으로써 체비지가 조성되어 한때 분규가 일어났던 곳이며 일제 강점기 중기에 발전된 시가지이다.

김천시장은 대략 1880년경부터 1930년경까지 50여 년 동안 조선 5대 시장[평양, 개성, 강경, 김천, 대구]의 하나였다. 『조선의 시장경제』에 의하면 가장 전성기였던 1908년의 김천시장의 거래 규모는 대구서문시장 다음이었으며 여타 시장은 김천시장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거래 품목은 축산물이 가장 많았고 생우가 주종을 이루었으며 이에 수반하여 우피의 거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아 우피의 외국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수산물의 거래도 활발하였는데 주거래 품목은 소금에 절인 간조기, 간고등어, 청어, 말린 간미기, 명태, 미역 등이었다. 이러한 염어는 해안 지방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생선을 사다가 감천 백사장이나 강둑에 말리거나 소금을 쳐서 만들었으며 충청도·전라도·경상남도 일대까지 공급하였다. 지금도 감호시장에는 20여 개의 건어물 점포가 늘어서 장날이나 명절 대목장에는 제수용 건어물 거래로 크게 붐빈다.

광복 직후 북한의 월남민과 고향을 찾는 귀향민에 의해 평화동 역전 부근을 중심으로 보따리 장사가 성행했으며 경제 통제의 해제로 그 일대가 대목장처럼 붐비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시도된 것이 평화동 염매시장으로 1950년에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6·25전쟁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나 1954년 재개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중앙도매시장이 1953년에, 감호시장중앙시장이 1954년에, 황금시장이 1959년에 개설되는 등 공설 시장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영세 상인으로 농민들을 상대로 생필품 거래가 주를 이루어 상품의 질이 떨어지는 한편 교통의 발달로 고급 상품을 찾아 대구에서 구입하는 경향이 늘어나게 되면서 김천의 상가는 위축되어 갔다. 이에 1960년대에 상가 번영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여 부흥 운동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1965년 김천상공회의소 주동으로 김천 상공인 윤리 강령을 채택하여 신용과 양질의 상품으로 고객을 되찾자는 운동을 벌였다.

또한 김천복지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한 후 상공 진흥책으로 김천역 앞에 상공센터의 건립과 함께 시범 점포를 개설하여 정찰제를 실시하고 전국 생산 공장과의 직거래를 통해 우수 제품을 염가로 공급하여 대구·대전에 빼앗긴 고객을 되찾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철도 당국의 부지가 매입이 되지 않아 김천시 남산동 구 시청 구내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산업센터를 건립하게 되었으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시 청사로 사용되어 상가 부흥 운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시장은 위축되어 고급 상품을 찾는 시민은 여전히 대구와 서울에서 물품을 구입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 상가에 변화가 있었다면 슈퍼마켓이 늘어난 것이었다. 슈퍼마켓은 1970년대 초기에 물가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정부에서 대형 소매 기구를 개발 육성시킴에 따라 1974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김천에는 1980년에 들어서면서 개설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골목마다 일용 식료품 가게는 모두 슈퍼마켓의 간판을 달고 있다.

또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유통업체가 들어서기 시작하자 김천에서도 1997년에 대형 농협 매장이 개설되고 1998년에는 이마트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농협이 다시 매점을 확장하여 하나로마트를 개점하는 등 대형 유통업체가 경쟁적으로 소비 인구를 끌어들임으로써 재래시장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현황]

2010년 현재 김천의 상설시장 중 공설 시장으로 감호시장황금시장이 있으며 사설 시장으로 평화시장, 부곡시장, 중앙시장이 있다. 정기 시장으로는 옛날 김천장이 섰던 5, 10일과 달리 5일마다 황금동 공설 시장 도로변, 감호시장 국도변, 평화시장 도로변을 중심으로 고정 점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을 가지고 나온 영세 농민들, 옛날의 보부상 대신 소형 트럭에 의류품이나 잡화를 싣고 와서 파는 떠돌이 영세 상인들, 그리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과거 지례면·대덕면·증산면에서 정기적으로 장이 섰지만 면 지역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교통 발달로 이제는 장이 서지 않는다.

또한 과일류와 원예 작물 재배가 급격하게 늘어남에 따라 농산물 대량 유통 체계 구축과 유통 비용 절감, 공정 거래 질서 확립 등을 위해 농산물 도매 시장 및 공판장이 운영되고 있다. 김천시는 김천시 모암동 187-11번지의 기존 시장이 노후하고 장소가 협소하여 2006년 5월 1일 김천시 대광동 1318-23번지김천시 농산물도매시장을 새롭게 개장하였다. 또한 김천시 지좌동 769-10번지에는 김천농협공판장이 있어 수확 철이 되면 농산물 거래로 활기를 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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