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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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門倡義 |
영어음역 | Nammun Changui |
영어의미역 | Nammun Righteous Army Movemen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주명준 |
[정의]
1592~1593년 고창 유림이 참여한 임진왜란기의 의병 항쟁.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창과 장성 지역의 유림이 구국의 기치를 내걸고 왜군을 막기 위한 의병을 일으키면서 일어났다.
[경과]
1차 남문창의는 1592년 8월 24일 김경수(金景壽)를 맹주로 하여 김홍우(金弘宇)·기효간(奇孝諫)·이수일(李守一) 등이 장성현 남문에 의병청을 세우고 격문을 보내 인근 고을에서 수많은 의병을 모집하여 일어났다. 순창현감 김제민(金齊閔)을 의병장으로 삼아 직산읍(稷山邑)에서 적을 무찔렀다.
고창에서는 좌랑 김홍우를 중심으로 두 아우 김광우, 김덕우와 박안동, 서홍도, 조여일 등 138명의 의사와 군량미 59석, 문수사의 승려 처한을 비롯하여 16명의 승군이 장성현 남문 의병청에 집결하였다. 무장에서 김성진, 김기수, 김란, 김경우, 김국서 등 190여 명이 군량미 68석을 모아 거의에 참여하였고, 흥덕에서 서연을 중심으로 40명이 군량미 20석을 모으고 연기사의 승려 자혜를 비롯한 17명의 승군이 참여하여 고창 지역에서는 458명의 의사와 173석의 군량미, 마태(馬太) 21석, 말 11필, 소 5두를 모아 장성현 남문 의병청에 임하였다.
의병소 맹진(盟陣)의 편제는 맹주 김경수, 의병장 김제민, 부사 기효간, 참모 김홍우, 도유사 서연이 임명되었다. 장성현 남문창의 주축 인사 77명 가운데 14명이 고창 출신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의병들은 일본과 조정의 협상을 관망하였다. 그러나 화의가 결렬되자 김경수는 1593년 5월 29일 다시 장성현 남문에 의병청을 열어 의병과 곡식을 모집하였으며, 장성현감 이귀는 관군 40명을 선발하고 읍병(邑兵) 300명을 조련하는 등 의병을 지원하여 2차 남문창의를 일으켰다.
[결과]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김홍우는 김광우·김덕우와 함께 의병 100명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명나라 장군 해생(解生)의 접반사가 되어 경기도 소사에서 왜병을 크게 무찔렀다. 나라에서 왜군에 저항하여 창의한 김홍우, 김광우 등에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을 제수하였고, 남문창의 주역 72위는 지금도 오산 창의사에서 매년 향사를 올리고 있다.
장성현 남문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 장성현감 이귀, 전 좌랑 김경수·기효간, 좌랑 김홍우 등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1802년(순조 2) 호남의 유림이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장성 남문 창의비를 건립하였다. 장성 남문 창의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성 남문 창의비각에 새겨진 77명 가운데는 승려 9명과 노복 1명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