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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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希亮 |
영어음역 | O Huiryang |
이칭/별칭 | 숙명(淑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갈마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기화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숙명(淑明). 양평공(襄平公) 오자치(吳自治)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부평부사를 역임한 오세훈(吳世勳)이고, 아버지는 공조참의에 증직된 오언린(吳彦麟)이다.
[활동사항]
오희량(吳希亮)은 어려서부터 종조(從祖)할아버지 오겸의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부모에 대한 효도가 깊고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하였다. 형 오희철과 한 이불에서 자고 항상 밥상을 함께 하는 우애심을 발휘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다. 결혼 후 처가가 있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갈마리에 정착하여 살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高敬命)과 김천일(金千鎰)이 의병을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군량을 모았다. 그리고 금산에 진을 치고 있는 고경명을 찾아갔으나, 이때는 모두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뒤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군량을 모아 출진함으로 나라에서 특별히 호군(護軍)을 제수하였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갈마리에 있는 영성산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대제학 송상기(宋相琦)가 행장을 짓고 이조참의 송달수가 묘표(墓表)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