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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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時海 |
영어음역 | Jeong Sihae |
이칭/별칭 | 낙언(樂彦),일광(一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5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의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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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53 |
성별 | 남 |
생년 | 1872년 3월 26일 |
몰년 | 1906년 4월 20일 |
본관 | 진주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개설]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1872년 3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53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정시해는 기우만(奇宇萬)과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양친 상을 당하여 6년 동안 계속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에 분개하여 영남 일대 지사들을 규합하는 데 동분서주하였다. 1906년에는 거의(擧義)를 알리는 최익현 의병장의 친서를 영남 지사들에게 전달하여 호응을 종용하였다. 처음에는 소모장으로 병력 증강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같은 해 윤4월 중군장으로 활약하던 중 1906년 4월 20일 순창에서 진위대의 기습을 받아 총성이 진동하는 사이 스승 최익현을 몸으로 감싸다가 유탄을 맞고 순국(殉國)하였다. 최익현이 관 위에 ‘대한의사정시해지구(大韓義士鄭時海之柩)’라고 써서 성산(聖山)에 안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성송면 하고리 삼태마을에 충효비가 세워져 있고, 무장성 안에 의사비가 세워져 있다. 1993년 4월 20일 일관기념관이 고창읍 교촌리에 세워졌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