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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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普天敎 |
영어음역 | Bocheongyo |
영어의미역 | Religion of Wide Heaven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병철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증산교 계통의 신종교.
[개설]
보천교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태생의 차경석(車京錫)[1880~1936]이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강증산(姜甑山)을 신앙 대상으로 하여 전라북도에서 창시한 신종교이다. 보천교의 교리는 1928년 교강 변경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교강 변경 이전에는 강증산을 상제로 모시면서 당시 현실을 원(冤)이 가득한 상극의 시기로 보고 해원상생(解寃相生)의 후천선경을 지향한다.
그러나 변경 이후 보천교의 교리는 유교의 인의(仁義)에 기초하고 있으며 경천·명덕·정륜·애인의 네 가지를 강령으로 제시한다. 즉 인의를 실천하는 것이 인도(人道)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한다. 신앙의 대상은 삼광영(三光影)으로서 일(日)·월(月)·성(星)을 받든다. 의례는 사절후치성(四節候致誠)과 5회의 정례치성을 드린다.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전은 『대순전경(大巡典經)』을 비롯하여 『대도지남(大道指南)』·『교조약사(敎祖略史)』 등이다.
[변천]
차경석은 1880년 7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연기리[현 부안면 용산리]에서 출생한 인물이다. 한 때 동학운동에도 가담했던 차경석은 1907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강일순[강증산]을 만난 후 제자가 되어, 이종 누나 고씨를 증산의 부인으로 맞아들이도록 주선하였다. 1909년 강일순이 죽은 후 1911년에 고부인 중심으로 선도교(仙道敎)[태을교]를 만들고, 1916년부터 교단 조직을 체계화하여 조직적인 포교를 시작하였다.
1921년 교명을 보화교(普化敎)로 개칭했으며 이듬해인 1922년 서울 창신동에 큰 건물을 짓고 교명을 보천교로 다시 개칭하였다. 1923년에는 서울에 인쇄소를 설치하여 『보광(寶光)』을 발행했고, 노동단체인 기산조합(己産組合)을 결성하였다. 1925년에는 최남선이 경영하던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인수하여 경영하였다. 그러나 1928년 보천교의 교강(敎綱) 변경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교세가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1936년 교주 차경석이 사망한 뒤 조선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산령으로 교단 본부가 해체되었다. 1945년 해방 후 다시 교단이 조직되었지만 과거의 교세를 회복하지 못했고 신파와 구파로 분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