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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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工藝 |
영어음역 | Minsok Gongye |
영어의미역 | Folkcraft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집필자 | 이숙희 |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통 기술로서 물건에 미적 가치를 부가하여 제작하는 조형 예술.
[개설]
민속 공예란 민중에 의한 공작 행위와 그 결과로 얻어진 민중의 생활 추이를 알 수 있는 제품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민속 공예는 민중에 의해 계승되는 무형적인 기능과 그 기능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생활 자료이다. 이러한 민속 공예는 일반 민중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대상으로 하므로 상층 계급을 위한 희귀한 공예품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미술사에서의 공예와는 다르다. 그리고 민속 공예의 미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건실한 형태나 꾸밈없고 성실한 구조를 견고하게 받쳐 주는 기술적인 숙련에서 비롯된다.
민속 공예를 통해서 만들어진 물건을 민속 공예품 또는 민예품(民藝品)이라고 한다. 고창 지역을 대표하는 민속 공예품으로는 무장상자, 윤도(輪圖) 등이 있다.
[무장상자]
무장상자는 전통적인 색지 공예를 고창 지역의 토산품으로 정착해 낸 대표적인 민속 공예품이다. 한지는 지질이 부드럽고 통풍이 잘 되며, 그 섬유질이 질겨서 잘 찢어지지 않고 매우 가볍고 냄새 또한 향긋하다. 그래서 한지를 주재료로 하여 오행설(五行說)의 기본 색인 청·백·적·흑·황의 오색을 기본으로 함(函), 장(欌), 다합 상자, 반짇고리 등 옷이나 생활용품을 넣어 두는 가구나 상자, 고리 등을 주로 만들어 사용해 왔다. 옛날부터 우리 할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의 혼수품으로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한 장 한 장 덧발라 만들어 내는 정성 속에 신혼의 단꿈을 되새기고 애틋한 소망을 그 안에 담아내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색지 공예품이 일반화된 것은 병자호란 이후로 보고 있다. 그 시기는 사회가 혼란해 생활이 어려워지자 혼사 때에 출가시키는 딸의 혼수품들을 넣어 두는 함이나 장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형편이 여유 있는 집에서는 5합 상자에 채워 넣고 서민층에서는 3합 상자에 정성을 담아 출가시켰다. 플라스틱 용기나 스테인리스 용기가 등장하기 이전인 195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흔히 만들어 사용하거나 색지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장인(匠人) 집에 주문하여 맞춤으로 사다 쓰기도 하였다.
한지 공예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공정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마다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문양을 파내는 작업은 가장 힘든 과정이다. 손의 적절한 힘과 문양의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지공예가 김혜옥(金惠玉)은 한지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실용적인 공예품이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20여 년을 전통과 실용을 담은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였다. 지금은 눈이 침침해 공예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명인 김혜옥의 인생이 단아한 관복함과 다도함에 어우러져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윤도]
윤도(輪圖)란 지남성(指南性)이 있는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들이 음택과 양택 등 풍수를 보거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나침반이다. 지남침의 원리는 중국에서 이미 한 대에 실용화되어 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고, 그 후 풍수사상과 더불어 풍수가들의 방위 결정에 필수적인 기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역(易)과 방위를 연결시켜 나타낸 것을 나경 또는 윤도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풍수가의 전유물이었던 윤도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뱃사람이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는 데 이용하기도 하고, 천문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휴대용 해시계에 정확한 남북을 정하는 데도 윤도가 사용되었다.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에서 윤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흥덕현에 속했던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든 윤도는 ‘흥덕 패철’이라 불리면서 유명해졌다.
예전에는 윤도를 제작하는 곳이 전라북도 무주에도 있었다. 무주에서 만들어진 윤도는 현재도 많이 볼 수 있다. 고창 윤도가 대추나무를 주재료로 하는 반면, 무주의 윤도는 박달나무를 재료로 만들었다. 박달나무는 대추나무에 비해 가볍지만 무르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고창 것은 방위를 자(子)·오(午)로 표시하는데, 무주 윤도는 동·서·남·북으로 표시하였다. 또 고창의 윤도는 둥근 평철 뿐만 아니라 선추·명경철·거북철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무주의 윤도는 작은 층수의 평철만 만들었으며 모양이 투박하고 정확성이 떨어진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으로 지정되어 있는 김종대는 300여 년을 넘게 이어져 온 윤도의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전통 나침반의 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고창 지역 문화의 자긍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