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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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禪雲寺大雄寶殿三身三世佛壁畵 |
영어의미역 | The Wall Painting at the Main Buddha Hall of Seonunsa Temple |
이칭/별칭 | 선운사 대웅보전 삼불벽화,선운사 대웅보전 비로자나삼신불벽화 |
분야 | 종교/불교,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선운사로 25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희 |
성격 | 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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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1840년 |
제작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선운사로 250] |
작가 | 원담|내원|익찬|도순 등 |
소장처 | 선운사 |
소장처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선운사로 250] 선운사 대웅보전 |
소유자 | 선운사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대웅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 벽화.
[개설]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1840년(헌종 6) 화승인 원담(圓潭)과 내원(乃圓), 익찬(益贊), 도순(道詢) 등이 제작한 것으로 토벽에 그려져 있다. 「비로자나불 벽화」와 「아미타불 벽화」, 「약사불 벽화」 등 세 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신불(三身佛)인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과 삼세불(三世佛)인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불(藥師佛)을 결합한 삼신삼세불화(三身三世佛畵)의 형식을 보여 준다. 1476년(성종 7)에 제작된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함께 조선 시대 후불 벽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불벽화, 또는 선운사 대웅보전 비로자나삼신불벽화로도 불린다.
[형태 및 구성]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1633년(인조 11)에 제작되어 선운사의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 비로자나 불상·아미타 불상·약사 불상의 뒤 3칸 벽면에 각각 후불 벽화로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불, 오른쪽[향좌]에는 아미타불, 왼쪽[향우]에는 약사불이 그려졌는데, 규모는 각각 476×430㎝, 471.5×318㎝, 495×320㎝로서 중앙의 「비로자나불 벽화」가 가장 크다. 벽화 하단부에 적혀 있는 화기에 의하면, 1840년 8월 전라북도 고창군 마명에 거주하는 오경장(吳景章) 등이 수명장수와 극락왕생 등을 기원하며 세 폭의 존상화를 그려서 봉안하였다고 한다.
세 폭의 벽화는 중앙에 본존불을 크게 그리고 좌우에 보살과 제자 또는 사천왕상 등을 묘사한 간단한 배치를 보여 준다. 「비로자나불 벽화」는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활짝 핀 연화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좌우에 시립하였고, 그 위로 아난존자(阿難尊者)와 가섭존자(迦葉尊者), 사천왕(四天王)이 배치되어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기 줄기가 긴 연화를 잡고 있고 원형의 두광에 키 모양의 신광(身光)을 진 특이한 광배 형태를 하고 있다. 구름에 싸여 상반신만 보이는 사천왕은 비파·창·탑 등의 지물을 들었고, 모두 화려한 보관을 썼다.
「비로자나불 벽화」의 왼쪽 벽면에 그려진 「약사불 벽화」는 왼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와 협시보살인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 및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이 2단으로 묘사되고, 그 뒤로 구름 속에 싸인 4구의 나한상이 그려져 있다. 약사불은 2중으로 된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고, 머리는 나발(螺髮)로 육계(肉髻)와 구별하지 않고 중앙 계주(髻珠)만 장식되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대고 있으며, 왼손은 임지와 검지를 맞대고 결가부좌한 발 위에 놓아 약합을 들었다.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합장을 하고 서 있으며 범천과 제석천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천의(天衣)의 옷 주름이 직선적이고 옷자락 끝은 뾰족하게 뻗쳐 있어서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비로자나불 벽화」의 오른쪽에 있는 「아미타불 벽화」는 아미타불과 백의(白衣)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비롯한 4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2구의 팔부중이 그려져 있다.
아미타불은 오른손은 가슴 부근으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왼손은 무릎 위에서 엄지와 검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였는데, 머리 정상부의 나발이 조금 뾰족한 것을 제외하고는 약사불과 동일한 형태를 보여 준다. 좌우에는 백의를 입고 두 손을 앞에 교차하여 정병(淨甁)을 든 관음보살과 연꽃을 든 대세지보살이 협시하였으며, 뒤로는 범천과 제석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사자관과 코끼리관을 쓴 팔부중(八部衆) 등이 배치되었다.
세 벽화 모두 구도는 본존불이 화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졌으며, 좌우 각각 4구씩 8구의 권속들만 배치된 간단한 9존도 형식을 취하였다. 권속들은 3단으로 보살과 나한, 제자 등이 본존을 에워싸는 구도를 보여 준다. 얼굴은 대체로 둥근 편이며, 상체는 사각형에 가깝지만 무릎이 높고 큼직하여 전체적으로 장대한 신체라 할 수 있다. 채색은 적갈색과 연한 녹색, 흰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채운(彩雲)은 흰색과 연녹색을 칠해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느낌의 색조를 보여 주고 있다.
[특징]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삼신불과 삼세불이 결합된 삼신삼세불 형식을 취하고 있다. 원래 삼신불은 비로자나불·석가불·노사나불, 삼세불은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불이지만, 여기에서는 삼신불의 바로자나불과 삼세불의 아미타불, 약사불을 함께 결합하여 새로운 도상을 만들었다. 삼신불과 삼세불이 결합된 도상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며, 대부분 삼신불과 삼세불을 합하여 비로자나불·석가모니불·노사나불·아미타불·약사불의 5불을 모두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서는 삼신불의 주불인 바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세불의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결합한 구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결합은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을 일체로 보는 사상적 배경에서 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불상에서는 기림사의 삼신삼세불상이 이와 동일한 구성을 갖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두 예밖에 남아 있지 않은 대표적인 후불 벽화로, 세 폭의 삼신삼세불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유일한 벽화이다. 아울러 18세기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이었던 의겸(義謙)을 계승한 내원과 익찬 등이 함께 조성한 작품으로서, 19세기 호남 지역 불화 양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