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3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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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敞禪雲寺塑造-三佛坐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50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우 |
제작 시기/일시 | 1633년 -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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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2월 22일 -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보물 제175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보물 재지정 |
현 소장처 | 선운사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500] |
원 소재지 | 선운사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삼인리 500] |
성격 | 불상 |
재질 | 소조 |
크기(높이) | 295㎝[비로자나 불상]|256.5㎝[약사여래상]|266㎝[아미타여래상] |
소유자 | 선운사 |
관리자 | 선운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개설]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대좌 밑면에 조성기가 묵서되었다. 묵서명을 통해 1633년 조각승(彫刻僧) 무염(無染)을 비롯한 도우(道祐), 성수(性修), 해심(海心) 등에 의해 조성되어 점안된 후 1634년 도금되어 법당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묵서명에는 존상들의 명칭을 비로자나[毘盧遮那], 약사(藥師), 아미타불(阿彌陀佛)로 명시하였다. 2012년 2월 22일 보물 제175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비로자나 불상 295㎝, 약사여래상 256.5㎝, 아미타여래상 266㎝이다.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상과 아미타여래상이 협시하고 있다. 삼신 불상은 비로자나·노사나·석가로 구성되고, 삼세 불상은 석가·약사·아미타불로 이뤄지는데,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비로자나·약사·아미타불로 구성되어 이례적이며 독특하다. 3m에 가까운 큰 규격의 삼불상 가운데 본존불인 비로자나 불상은 좌우 여래상들보다 크게 조각하여 주존불임을 강조하였다.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규격과 착의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신체 비례, 얼굴이나 옷 주름 표현 등은 유사하다. 모두 위아래로 긴 얼굴형과 길쭉한 신체에 낮고 넓은 무릎 표현으로 장대한 형태미를 보인다. 비로자나 불상은 변형 편단우견(偏袒右肩) 대의(大衣)와 수평으로 가로 지른 승각기(僧脚崎)를 입었으며, 두 손은 앞으로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취하였다.
지권인은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펴고 왼손 검지 한마디가 오른손 검지 끝을 누른 모습이고, 나머지 손가락은 구부린 채로 왼손이 오른손을 포개었다. 이러한 독특한 지권인 모습은 조선 시대 비로자나 불상에 보이는 형태이다. 낮은 육계(肉髻)에 중간 계주·정상 계주가 있으며, 장방형 얼굴에는 작은 눈과 입·긴 코 등 이목구비가 작고 중앙으로 몰려 있어 부드럽고 귀여운 인상을 준다.
좌우에 협시한 여래상들은 편삼(偏衫) 위에 대의를 입은 변형 통견식(通肩式)이며 약사 불상은 꽃잎 모양으로 접힌 승각기, 아미타 불상은 수평형 승각기를 입었다. 약사여래상의 경우 오른쪽 어깨를 두른 대의가 둥글게 반원을 그리며 팔꿈치까지 드리우지만, 아미타여래상은 대의가 양어깨를 둘러 길게 늘어뜨려 마치 통견식과 같은 모습이어서 서로 차이가 있다. 한편 두 여래상의 손 모습은 한 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손 위치가 서로 반대이며 약사 불상의 경우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특징]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비로자나, 약사, 아미타라는 삼불 구성과 전각을 꽉 메운 거대한 규모가 특징이다. 그리고 허리가 길고 무릎이 낮은 길쭉한 신체 비례에 비해 폭이 좁은 얇은 부피감 그리고 중앙으로 몰린 작은 이목구비와 밋밋하면서도 어깨와 소맷자락에 표현된 부드러운 옷 주름은 두드러진 특징이다. 삼불 구성이나 장대한 신체 비례 등은 김제 귀신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1516호]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신체와 얼굴의 양감이나 옷 주름 등에서는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좀 더 도식적이고 딱딱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보기 드문 비로자나·약사·아미타로 구성된 삼불상이며, 장대한 크기와 건장한 신체미가 두드러지는 조각승 무염의 초기 작품이다. 비로자나·약사·아미타 삼불 구성에 대해 연구자에 따라 삼신불(三身佛)과 삼세불(三世佛)이 합쳐져 만들어진 삼신 삼세불(三身三世佛)로 해석하기도 하고 시·공간적 개념으로 삼세불 혹은 삼방불(三方佛)로 보기도 한다. 여러 해석이 있으나 대좌 명문에 따라 중앙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약사와 아미타로 구성된 삼불상의 초기 작품인 점에서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17세기에 유행한 큰 규모의 소조 불상인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밋밋하고 둔탁한 양감을 지닌 불상인 점과 대좌 밑면에 묵서된 ‘목삼존(木三尊)’이라는 내용을 전거로 목조 불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목심 위에 흙으로 마무리한 점에서 소조 불상으로 분류된다. 또한 1633년이라는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승 무염이 주축이 되어 조성되었다는 점이 밝혀져 자료적 가치도 높다.
무염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 승려로 영광 불갑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1635년 제작, 보물 제1377호], 대전 비래사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1650년 제작, 보물 제1829호], 속초 신흥사 목조 아미타 삼존 좌상[1651년 제작, 보물 제1721호], 완주 정수사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1652년 제작, 보물 제1853호] 등을 조성하였다. 시기적으로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무염이 우두머리 조각승으로 제작한 가장 이른 작품이지만, 이후에 만든 다른 작품들과 양식적인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점도 연구 과제이다.
즉 무염의 또 다른 초기 작품인 영광 불갑사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과는 불과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신체 비례, 얼굴과 신체의 양감, 얼굴 세부 표현 등에서 차이를 보여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무염 작품이라는 설에 의문을 가지는 견해도 있고 1633년 무염이 조성하고 1634년 법해(法海)가 도금하였다는 의견도 있다. 우두머리 조각승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지만 참여한 조각 승려 집단이 무염과 함께 활동한 차화승임이 명확한 점에서 무염 또는 그 유파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