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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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廬集 |
영어의미역 | Posthumous Works of Chorye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원철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세거한 이유태의 문집.
[편찬/발간경위]
이유태(李惟泰)[1607~1684]가 작고한 후, 손자인 이단성(李端誠)이 가장(家藏) 시문을 수습하고 연보를 편찬하던 중 세상을 떠나자, 그 후 5세손(이름 미상)이 임성주(任聖周)[1711~1788]와 김지행(金砥行)[1716~1774]의 교정을 거쳐 17책으로 산정하였다. 이후 다시 김정묵(金正默)[1739~1799]의 산정을 거쳐 보관하던 중, 7세손 이경(李鏡)이 다시 유고를 수습하여 14책으로 정리한 뒤 1865년 26권 14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으니, 이것이 초간본이다.
한편, 연보는 유고와 마찬가지로 임성주와 김지행의 교정을 거쳐 보관하였다가, 6세손 이재원(李在元)이 다시 다른 자료들을 보완하여 1805년 4권 2책 목활자를 사용 별책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초려집』은 초간본이 이루어 진 뒤 100여 년이 지난 1973년 본격적으로 개간이 이루어졌다. 초간 때 누락된 「사서문답(四書問答)」과 정훈(庭訓)·연보(年譜) 등이 증보되어 35권 18책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하였으니, 이것이 중간본(重刊本)에 해당된다.
이유태 사후 300주기가 되는 1984년 3차 개간이 이루어졌다. 석인 중간본을 저본으로 하고, 어떤 편목(編目)은 이유태의 육필본이나 당시의 필사본으로 대체하는 등 빠진 것을 보완하여 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에서 『초려전집(草廬全集)』 상·하 2권으로 다시 영인, 발간하였다.
[서지적 상황]
초간본은 원집 26권 14책이며, 연보 4권 2책을 합하여 모두 30권 16책으로서 목활자본이다. 중간본은 35권 18책으로 석인본이다. 3차본은 중간본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이다. 초간본은 현재 규장각(규 5007, 고 3428-145), 장서각(4-6564)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중간본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1039)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3차 간본 영인본을 대상으로 기술하면, 책머리에 간행사·서문·해제와 이유태의 유묵이 있고, 총목이 이어진다. 권1은 시 451수인데 오언 율시 106수, 칠언 율시 345수이며 그 가운데 만시 90여 수가 포함되어 있다. 권2~5는 소(疏) 116편으로, 그 중 「기해봉사(己亥封事)」는 2만 9천여 자의 장문으로서 시폐(時弊)를 열거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권6~13은 서(書) 740여 편, 권14는 제문, 권15는 묘문(墓文)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6은 「예변(禮辨)」 15편, 권17은 「의례문답(疑禮問答)」·「경의문답(經義問答)」 등 38조, 권18은 「시의문답」 등 36조, 권19는 「역설(易說)」 9편, 잡저 24편, 권20은 「사례홀기(四禮笏記)」이다. 그 뒤를 이어 『정훈』1권 14조목과 『사서답문』8권, 『심경현토석의(心經懸吐釋義)』2권, 「연보」4권, 「가장(家狀)」1권, 부록 2권, 「문산문답」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동안 기록상으로만 이유태의 저술로 전해오던 『향약』1책은 최근에야 발견되었기에 발간된 문집에는 포함되지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초려집』에 실려 있는 「예변」이나 「의례문답」을 통해 조선 중기 유학자들이 천착한 예학의 깊이와 규모를 알 수 있으며, 특히 숙종조 복제예송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당시의 시폐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따라 원대한 국정 개혁책을 제시한 「기해봉사」는 병자호란 뒤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시무책(時務策)으로서 국왕 현종의 인정을 받아 조정에서 그 시행을 두고 수십 차례 논의되었으며, 이이의 경세학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