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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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廬李惟泰遺稿 |
영어의미역 | Literary Remains of Yi Yutae|Posthumous Works of Choryeo Yi Yutae |
이칭/별칭 | 『이유태선생유고』,『초려수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 3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성봉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월 11일 - 초려이유태유고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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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초려이유태유고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고문헌|문집 |
관련인물 | 김장생|송준길|송시열 |
저자 | 이유태(李惟泰)[1607~1684] |
책수 | 4책 |
사용활자 | 필사본 |
가로 | 28.3㎝[『초려시필』]|31.3㎝[『초려선생필』] |
세로 | 38.6㎝[『초려시필』]|40.4㎝[『초려선생필』] |
소장처 | 경주이씨 문중 이정우 |
소장처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 302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세거한 이유태의 유고집.
[개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조선 현종 때의 학자로서, 사계 김장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예학에 이름이 높았다. 학문으로 이름이 높아 인조 때 세자의 사부를 지냈고, 이조참의, 승지, 대사헌 등을 지내는 동안 국정을 운영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1675년(숙종 1) 제2차 예송논쟁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되었다가 5년 만에 풀려났다. 특히 효종 때는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북벌계획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금산서원(錦山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편찬/발간경위]
초려이유태유고(草廬李惟泰遺稿)는 『상소』 1책, 『초려시필(草廬時筆)』 2책, 『초려선생필(草廬先生筆)』 1책 등 총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려시필(草廬詩筆)』은 1676년(숙종 2) 서사(書寫)된 것이고, 『초려선생필(草廬先生筆)』은 숙종 연간인 1675~1720년 경에 서사된 것이다.
[서지적 상황]
이유태의 유고 중 하나인 『정훈(庭訓)』은 이유태가 영변에 유배되어 있을 때 쓴 가훈이다. 분량은 101쪽이며, 1677년(숙종 3) 7월 1일 서사된 것이다. 『정훈』은 이유태가 나이 73세로 유배에서 풀려날 길이 막연한 심정에서 가정일을 부탁하며 적어 보낸 것으로, 총 19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머리에 서문(序文)이 있고, 이어서 1. 사당지의(祠堂之儀) 2. 시제지의(時祭之儀) 3. 기제지의(忌祭之儀) 4. 묘제지의(墓祭之儀) 5. 상장지의(喪葬之儀) 6. 거실지의(居室之儀) 7. 제산지의(制産之儀) 8. 숭절지의(崇節之儀) 9. 불우지의(不虞之儀) 10. 매전지의(買田之儀) 11. 치포전지의(治浦田之儀) 12. 가연지의(家宴之儀) 13. 대빈지의(待賓之儀) 14. 화수지의(花樹之儀) 15. 관혼지의(冠婚之儀) 16. 사상지계(四喪之契) 17. 거향지도(居鄕之道) 18. 대고구지도(待故舊之道) 19. 처세지도(處世之道) 등으로로 이루어져 있다. 『정훈』 1책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상소』는 본문 96장으로, 정고본(定稿本)이다. 사주쌍변이며 행수는 10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초려시필』은 선장본(線裝本)이며, 가로는 28.3㎝이고 세로는 38.6㎝이다. 1책은 본문 46장, 행수는 2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4자이다. 2책은 본문 145장, 행수는 5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19자의 수고본(手稿本)이다. 『초려선생필』은 본문 99장으로 이유태의 각종 시와 문장들이 유려한 필체로 서사된 수고본이다. 선장본이며, 가로는 31.3㎝이고 세로는 40.4㎝이다. 행수와 자수는 일정하지 않다.
[구성/내용]
『초려시필』의 시는 매 쪽에 2행에 4자씩으로 되어 있으며, 첫째 구는 ‘현가형제 최상친사(賢家兄弟 最相親事)’로 시작하여 마지막 구는 ‘절섬누춘 풍장재금(切纖累春 風長在襟)’라 되어 있다. 『초려시필』의 마지막에는 “붓은 형체가 없으나 다만 옛사람의 뜻을 볼 수 있으니 세속의 귀로 듣지 말아라(爲筆筆無形 但見故人之意 母令俗耳聽 丙辰臘月書于鐵翁)”라고 하였다.
『초려선생필』의 첫 번째 시는 “비가 오니 그윽한 숲의 맑은 기운이 다시 음산하고/ 오래 앉아 시를 노래하니 초당은 깊고/ 아이를 불러 강변의 일을 자주 물으니/ 화곡이 가득한 밭두둑이 물에 반쯤이나 잠기었고/ 산비는 처음에는 맑았으나 산의 기운은 험하고/ 풀벌레 곳곳에 있는데 두화는 깊고/ 대나무에 기대어 홀로 서 있다가 시 읊는 것을 파한다(積雨幽林晴復陰 吟詩久坐草堂深 呼兒頻問江邊事 華穀盈疇水半沈 山雨初晴山氣險 草蟲處處豆花深 倚筇獨立吟詩罷)”라는 시로 시작하고 있다. 『초려선생필』에 실려 있는 시 중에는 이유태의 문집인 『초려집(草廬集)』에 실리지 않은 시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자료적 가치가 높다. 1984년 1월 1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