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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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Gama Sori |
영어의미역 | Folk Song of Palanqu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혼례 때 신부를 싣고 가는 가마꾼들이 부른 민요.
[개설]
「가마소리」는 혼례 때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이동시키는 수단인 가마를 메고 행진하면서 부르는 소리다. 전통사회에는 차량이 없었으므로 혼례 때 가마로 10~20리 이상 먼 거리를 움직여야 했고, 심한 경우에는 100리 넘게 이동해야 했다. 이러한 일은 가마꾼들에게 중노동이었고, 발을 맞추고 행동을 통일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노동이었다.
우리나라 혼례 문화의 특성상 전국에 고루 분포했을 이 소리는 공주에서만 전승되며, 손으로 들거나 개인이 어깨로 메는 관료들의 사인교와 달리 일의 작업 형식이 달랐던 전형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채록/수집상황]
최초의 채록은 1997년 12월 17일 채록자 이걸재·최병숙에 의해 윤석천·윤석만·조병렬 외 4인을 창자 및 증언자로 하여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어천리 노인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신풍면 선학리, 우성면 봉현리·한천리, 의당면 도신리·청룡리·두만리·율정리 등 여러 마을에서 추가 채록 및 자료 조사를 실시하였다.
[구성 및 형식]
「가마소리」는 속도로 보았을 때 긴소리와 잦은소리로 나뉜다. 후렴재는 다른 소리와 마찬가지로 마을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존재했다. 긴소리와 잦은소리의 가사적인 구분은 없었고, 같은 가사를 느리게 하는 것과 빨리하는 것으로 긴소리와 잦은소리의 구분을 두었다.
메김소리와 후렴소리가 함께 불리는 소리의 특성은 메김 소리와 후렴구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주시의 「가마소리」는 메김소리에 따라 후렴재가 바뀌거나 앞과 뒤에서 후렴소리를 같이하여 분리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박자는 느린 소리는 2분 4박으로 다른 일노래보다 조금 빠르다. 빠른 소리는 두 박자의 개념으로 소리를 하는데, 발을 맞추면서도 두 박자가 세 덩어리로 뭉쳐서 하나의 소리를 이루거나, 네 덩어리 혹은 다섯 덩어리가 뭉쳐 하나의 구절을 이루는 등 변화가 심한 형태다.
공주 일원에서 보이는 「가마소리」의 후렴은 ‘으여바라쉬- 어이’, ‘쉬~리쉬리 어여- 허이’, ‘으여의여 쉬리쉬- 어이’, ‘의이더차더 쉬- 어이’, ‘쉬---- 어이’ 등이다. 앞의 소리로 네 걸음을, 뒤에 소리로 두 걸음을 옮긴다. 가사를 붙여 메김소리를 가는 경우 앞의 가마꾼이 ‘의여바라 쉬’까지를 소리치면, 뒤의 가마꾼이 알았다는 대답으로 ‘어이’ 또는 ‘허이’ 하고 대답한다.
4인교의 경우 민가에서 사용한 가마는 중심에 ‘최장’(‘채장’라고도 함)이 길고 좁아, 앞뒤 횡으로 선다. ‘사령고’와 ‘후사’의 앞과 뒤로 ‘방망이꾼’이라고 불리는 2인의 장정이 가마를 멘다. 이들은 최장을 가로지르는 방망이형의 나무에 어깨 끈을 걸어서 어깨에 메는데, 한쪽 어깨만을 사용할 수 없어서 어깨 끈을 옮길 때만 선소리를 메긴다. 이때는 2개의 구절을 노래하여 선소리에서 준비하고, 후소리에서 끈을 바꾸어 멤으로써 행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어깨를 바꿀 수 있었다. 종합해볼 때 민가의 가마는 알려진 것처럼 2인씩 나란히 가마를 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들어가는 소리(가마를 메고 일어서면서)〉
어허허허허여이 어이/으여바라 쉬이
〈초입 소리〉
어허허허허여이 어이(받음: 으여바라 쉬이)/ 마당 한바퀴 돌아보세(받음: 허어이)/ 설렁설렁 출발하세(허어이)/ 설렁설렁 출발하세(허어이)/ 갈길이 삼십리네(허어이)/ 정은 마당에 두고(허어이)/ 이렁 저렁 준비되었으믄 설렁설렁 떠나보세(허어이)/ 요강은 디려 놨나(허어이)/ 주념부리는 준비했나(허어이)
〈길을 알려주는 소리〉
으여바라 쉬이(허이 또는 어이)/ (언덕 또는 경사 힘한 길에서)앞산이 높다 어여봐라쉬(허어이)/ (길이 굽어진 곳에서)활꼬부린다 어여바라쉬(허어이)/ (도랑이나 구거가 앞에 있는 경우에)도랑이다 슬근슬근 발 맞춰라(어여바라쉬 어허이)/ (징검다리 건너기 전)노도독이 가루막네(어여바라쉬 허어이)/ 슬근슬근 발맞추구 하나 둘 스이 느이(어여바라쉬 허어이)/ (왼편으로 돌때)좌로 굽네(어여바라쉬 허어이)/ (오른편으로 돌때)우로 굽네(어여바라쉬 허어이)/ (험한 길에서)돌밭이네(어여바라쉬 허어이)/ (바른길에서)곧장 가네(어여바라쉬 허어이)/ (오르막 내리막에서)오르막길이다(어여바라쉬 허어이), 내려막길이다(어여바라쉬 허어이)
〈행동을 알려주는 소리〉
으여바라 쉬이(허이 또는 어이)/ 이번 소리 끝나므는 잦은 걸음으로(어여바라쉬)/ 바삐 가세(어여바라쉬)/ 이번 소리 끝나므는 느린 걸음으로(어여바라쉬)/ 츤츤히 가세 으여바라 쉬이(어여바라쉬)/ 가마가 출렁이네 발을 맞춰(어여바라쉬)/ 고이 가세(어여바라쉬)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공주의 「가마소리」는 관혼상제 중 혼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유희적 성격보다는 가마를 메고 가는 노동의 특성 때문에 생성된 것이다. 가마는 두 사람이 메는 2인교와 4인이 메는 4인교로 구별되는데, ‘최장’의 길이가 길지 않아서 뒤에서 메는 사람은 앞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행진하는 길이 곧은지 굽었는지, 물을 만나는지, 돌이 많은지 알지 못하여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갑작스러운 길의 변화로 인하여 넘어지거나 비틀거려 가마가 심하게 흔들릴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길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는 지를 알려주는 소리를 하게 되었다. 또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것이 일의 효율성을 높이며 심신을 덜 피로하게 하는 일이었으므로 박자를 맞추는 소리로서 노래가 발전하였다.
[현황]
「가마소리」는 1950년대에 소멸되었다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이걸재에 의해서 채록과 자료 수집이 이루어졌다. 2006년 의당면 우리문화 공연단체인 ‘논두렁 밭두렁’에서 재현하였고, 2006년에 MBC 텔레비전 ‘에너지 우리소리를 찾아서’에 출연(이걸재·유왕종·박동화·전용주·이원하)하였으며, ‘MBC 선정 무형문화재’에도 출현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가마소리」는 유형은 다르지만 전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가마소리」만이 조사·채록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재현되지 않은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