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86 |
---|---|
한자 | 不二農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설립 시기/일시 | 1904년 - 불이 흥업 주식 회사 설립 |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 불이 흥업 주식 회사 전라북도 옥구군에 농장 설립 |
사업 시기/일시 | 1920년~1922년 - 간척 사업을 벌임 |
모집 시기/일시 | 1924년 - 제1차 불이농촌 이주자 모집 |
설립 시기/일시 | 1925년 - 불이 공립 심상 소학교, 불이 공립 실과 여학교, 불이 척식 농사 학교 등 설립 |
현 소재지 | 무의인도 -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
성격 | 간척지 마을 |
[정의]
근대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불이 흥업 주식 회사의 간척 사업으로 생성된 간척지 마을.
[개설]
불이 흥업 주식 회사는 1904년(광무 8) 조선에 들어와 1919년 전라북도 옥구군에 농장을 설립하고 간척 사업을 벌었다. 이들이 간척 사업을 한 곳은 전라북도 옥구군 해변에서 당시 섬이었던 무의인도(無衣人島)까지의 6㎞와 알산도(卵山島)에서 어은리까지 8㎞ 등 총 14㎞ 구간이었다. 이 지역의 서해안의 특성 때문에 썰물 때는 갯벌이 벌판처럼 펼쳐져 방조제만 쌓으면 농토로 바꿀 수 있는 간척의 최적지였다.
불이 흥업 주식 회사는 이곳에 1920년부터 3년에 걸쳐 간척 사업을 벌였는데 이 사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에서 땅을 잃은 농부들이었다. 이들은 간척 사업이 끝나면 간척 농지에 대한 영구 소작권과 소작료 3년 면제, 간척 공사 임금 지급이라는 모집 광고를 보고 주변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임금과 약속된 농지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옥구 저수지를 중심으로 간척지를 구분하여 남쪽은 한국인들이 소작을 짓는 옥구 농장으로, 북쪽의 약 9,917,355㎡는 불이 농촌이라 하여 일본인 이주자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이주자들은 불이 농촌이 직접 모집하지 않고 ‘불이 농촌 이주민 규정 요강’에 해당하는 이민을 각 부(府)와 현(縣)에 의뢰하였다. 1924년 4월 불이 농촌은 각 부(府)와 현(縣)에서 선발된 제1회 이주자를 유치했지만, 8개 현으로부터 33호가 응모한데 불과했기 때문에 이주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요강을 개정했고, 그 결과 1928년부터는 응모자가 늘어났다. 1925년에는 이주자 자녀 교육을 위해 불이 공립 심상 소학교, 불이 공립 실과 여학교, 불이 척식 농사 학교 등을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