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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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群山第二公普期成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4월 19일 - 군산제2공보 기성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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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4월 1일 - 군산 제2 보통 학교 설립 신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8년 8월 16일 - 군산 제2 보통 학교 인가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9년 4월 1일 - 군산 제2 보통 학교 개교 |
최초 설립지 | 군산제2공보 기성회 사무소 - 군산부 개복동 7 |
설립자 | 군산제2공보 기성회 |
[정의]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제2 공립 보통 학교 설립과 후원을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
[개설]
일제 강점기 학교는 “충량한 국민 육성”을 목표로 운영되었던 기관으로 일본어 교육과 실업교육이 강조되는 공간이었다. 그로 인해 1910년대 근대 교육=식민 교육이라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어 한국인들이 학교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거부감은 관공립 학교 취학 거부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919년 3·1 운동 이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3·1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학교 교육이 모두 식민 교육과 민족적인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독립을 이루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실력 양성론이 재차 대두되며 학교교육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이에 근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립 보통 학교 설립 운동이 군산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3면 1교제 원칙에 따른 공립 보통 학교 설립 제한과 입학 기준 강화, 수업료 체납에 다른 퇴학 등으로 한국인 학생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었다. 이에 군산 지역 사회주의 운동가와 유지들이 협력하여 기성회를 조직한 후 군산 제2 공립 보통 학교 설립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군산제2공보 기성회는 기존의 군산 공립 보통 학교에서 문제가 되었던,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노력 하였다. 1927년 4월 29일 설립 후 임원진을 구성하여 학교 설립 문제를 군산 지역 현안 문제로 여론을 조성하여 군산 지역민들이 관심을 갖게 하였다. 동시에 학교 설립을 위한 기부금 모집 활동을 진행하여 1929년 군산 제2 공립 보통 학교가 설립될 수 있었다.
[설립 목적]
군산 지역 학력 아동에게 교육 기회 제공과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후원할 목적으로 군산제2공보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변천]
군산제2공보 기성회는 지역 내 사회주의 운동가와 유지들이 참여한 가운데 1927년 4월 19일 설립되었다. 설립 직후 의장 이원형(李源衡), 서기 김완동(金完東), 사찰 심학윤(沈學允), 규칙 수정 위원 윤상훈(尹相勳)·조용관(趙容寛)·김응배(金應培)·방한회(方漢廻)·권태형(権泰亨), 실행 위원 30인, 전형 위원 7인으로 임시 집행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보통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기성회를 조직하여 공립 보통 학교 설립을 전개해 나갔다.
설립 후 군산제2공보 기성회는 감사·서무·재무부의 체제를 갖추고, 학교 설립에 가장 중요한 재정 확보를 위해 기부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기부금 모집과 함께 중요 안건이 있는 경우에는 위원회 회의를 개최하였다. 활동 기간 동안 총 5~6 차례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위원 30명 중 출석하는 위원은 5~6명에 불과하였다. 그 이유는 위원회 소속 인물 중 사회 주의자와 무산 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참석률이 낮았다.
군산제2공보 기성회에서는 1928년 신 학기가 시작하는 4월 개교를 목표로 군산부 둔율리에 있는 부지 2,000평을 매입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그 후 학교 부지를 군산 소교동에 있는 일본인 소학교 교사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꾼 후 1929년 4월 개교하여 입학생을 받기 시작하였다.
설립 일 년이 지난 1930년 부지 대금 미납과 운동장 매입 공사비 부족 등으로 제2 공립 보통 학교 존폐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군산제2공보 기성회에서는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부민 대회(府民大會)를 개최를 통해 의견 취합과 기부금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1931년도에도 기부금이 모자라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학교 설립을 주도했던 군산제2공보 기성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군산제2공보 기성회에서는 임원을 중심으로 기부금 모집, 동조자 포섭, 당국과의 교섭 등 공보 설립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펼쳤나갔다.
기부금 모집은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운데 군산 부민(群山府民)의 참여가 있었다. 이때 개인 재산 정도에 따라 등급을 정하여 주민들에게 부담하는 호별할(戸別割) 방식을 이용하였다. 또한 임원들은 군산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군산 제2 공립 보통 학교 설립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였고, 설립 분위기 확산을 위해 부민 대회를 개최하여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위와 같은 활동을 통해 일정 정도 기부금과 동조자가 모인 이후에는 도 당국과 설립 인가 문제를 협의하여 군산에 제2 공립 보통 학교가 설립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군산제2공보 기성회의 공립 보통 학교 설립 활동은 교육을 통한 실력 양성의 한 방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기성회를 조직하여 학교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