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14 |
---|---|
한자 | 東學農民運動 |
이칭/별칭 | 동학의 난,동학 운동,동학 농민 혁명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오정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대길 |
[정의]
1894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동학 교도와 농민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
[개설]
동학 농민 운동은 조선 후기 위정자의 수탈과 탐욕에 맞서 1894년 동학 교도와 농민이 합세하여 전라북도 고부 지역을 시작으로 진안과 용담 지역 등 전국으로 확산된 혁명 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신분제 사회와 봉건적 지배 체제에서 수탈을 당하던 조선의 백성은 1876년 개항 이후 일본과 청나라 및 서양 세력의 경제적·문화적 침투로 인해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며 생존권을 위협받았다. 1860년에 등장한 동학이 정부의 탄압으로 종교적 자유는 물론 생존마저 어렵게 되자 동학 조직은 종교 운동을 넘어 정치 투쟁을 위한 결집을 모색하였고, 생존권을 확보하고 외세의 침탈에 대항하려는 일반 농민들과 결합하게 되었다.
[동학의 진안 포교와 동학 농민군의 활동]
동학이 진안 지역에 전래된 과정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이와 관련하여 진안군 백운면 오정리가 주목된다.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인 전봉준(全琫準)이 백운면 오정리에서 훈장을 하면서 진안 지역의 여러 인사들과 사회 개혁에 대하여 논의하였으므로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였을 때 이 지역 인사들의 다수가 자진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로 오정리 출신으로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한 전병화와 전익호[1845~1897], 고부 출신인 전동필, 진안의 접주이자 남원의 김개남 부대에서 주로 활약한 이사명 등이 거론되는데, 전봉준이 오정리에서 훈장을 하였다는 일로부터 이들과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
동학 농민군의 1차 봉기에 참여한 진안 지역의 주요 인물은 이사명·전화삼·김택선 등인데, 이사명과 전화삼은 2차 봉기에도 참여하였다. 집강소 시기에는 용담 지역에 거주하는 김기조가 금산군의 집강(執綱)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진안과 용담 지역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진안·장수·무주·용담·금산의 다섯 읍 또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막아냈는데, 이는 하동과 운봉의 모양새를 본뜬 것이다.”라는 『전봉준 공초록(全琫準供招錄)』의 기록을 보아 동학 농민군이 진안과 용담을 점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진안군 성수면 지역에 거주하던 최제학(崔濟學)의 글을 모은 『습재 실기(習齋實記)』에 “갑오년 8월에 동학의 무리 김개남이 진안에 와서 약탈하였는데, 습재의 조부 지은공이 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8월 4일에 사망하였다.”라는 서술이 있다. 이를 통해 진안 지역이 8월 초에는 동학 농민군의 수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차 봉기 참여자에 대해서는 『전봉준 공초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2차 봉기를 준비하면서, “진안에 거주하는 동학 접주 문계팔·김영동·이종태……등과 함께 모의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손화중 이하 전주·진안……등 원근 각 지방 인민에게 혹 격문을 돌리며 혹 사람에게 전하여……전라우도(全羅右道)에서 군사를 모으기를 4천여 명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전봉준은 2차 봉기를 준비하면서 진안에 거주하는 접주 문계팔과 김영동·이종태 등과 논의하였고, 격문과 전문을 진안 등지에 보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안 지역에 2차 봉기에 호응할 수 있는 일정한 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다른 기록에 따르면, 용담 지역에서는 서도필·박만호·이만실·조윤삼·박이팔·김윤일 등이 1894년 11월 12일 상조림장 전투에서 교도대에 체포된 뒤 사살되었고, 진안 지역에서는 김치서·창성도·이성원·김중이 등이 1894년 11월 18일 고산읍에서 교도대에 체포된 뒤 사살되었다.
[결과]
진안 지역에서는 ‘진안 전씨’라고 불릴 정도로 천안 전씨가 오랜 기간 거주한 까닭에 같은 천안 전씨인 전봉준과의 인연이 강조되었다. 전봉준이 진안 지역에 거주했을 때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은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였고, 인근 무주와 임실 지역 동학 농민군과 연계하였다. 동학 농민 운동 제2차 봉기에서도 진안 지역 인물들이 전봉준과 함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우금치 전투 이후 3번의 전투[용담 전투·상조림장 전투·진안 전투]가 벌어졌다. 용담 전투는 무주와 진안 지역의 동학 농민군이 용담현을 점령한 전투로 우금치 전투 이후 드물게 동학 농민군이 승리한 전투이다. 반면 상조림장 전투와 진안 전투는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여 이후 진안 지역에서 동학 농민군의 활동이 침체되는 계기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학 농민 운동은 일본군과 관군의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평등 사상·민주 사회 건설·세계 평화를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으로 우리 민족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진안 지역은 동학 농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특히 전봉준과의 관계 및 연대가 각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