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515 |
---|---|
한자 | 龍潭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대길 |
[정의]
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개설]
용담 전투는 상조림장 전투·진안 전투로 이어지는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이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의 봉기 이후 진안 지역에서는 11월부터 동학 농민군과 관군·일본군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경과]
본래 용담현은 작은 고을로 1894년에 동학 농민군이 봉기한 이후 동학 농민군에게 점령당하였으나 8월 이후 동학 농민군의 집중력이 느슨해지면서 관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1894년 11월 8일 금산에 있던 동학 농민군이 충청도 옥천 방면에서 내려오던 일본군과 금산 북쪽에서 교전한 후 금산을 포기하고 진산·고산·용담 방면으로 후퇴하였다. 진안·고산·진산·금산 등의 지역에서 모인 동학 농민군 수만 명이 용담현의 북쪽으로 돌입하자 관군도 이에 맞서 저항하였다. 이때 무주 접주 이응백과 그의 두 아들이 수천 명을 거느리고 동쪽에서 진입하여 관군의 후방을 공격하면서 승세가 동학 농민군에게 기울었다.
[결과]
1894년 11월 9일 오시(午時) 무렵에 동학 농민군이 용담현을 점령하였다. 이 전투로 공청 44칸과 인가 470호가 불에 탔고, 17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용담 지역은 금산과 더불어 동학 농민군이 한양으로 진군할 때 작전상 중요시하던 지역이었다. 동학 농민군이 이틀에 걸친 격전 끝에 용담을 함락시켰던 사실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용담 전투의 결과 전라북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군이 진안 지역으로 진입하여 상조림장 전투와 진안 전투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