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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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潭縣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용담현의 통치를 담당하였던 지방관.
[개설]
용담 현령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용담현의 통치를 담당하였던 수령을 가리킨다. 용담현의 수령은 원래 현령이었으나 1646년(인조 24)에 현감으로 격하되었다. 1656년(효종 7)에 다시 현령으로 회복되었다가, 용담현이 진안군으로 편입되면서 용담현의 현령직은 사라지게 된다.
한편 현령의 품계는 종5품이었으며 좌수(座首), 별감(別監), 군관(軍官), 아전(衙前) 등이 현령 또는 현감의 통치 행위를 보필해 주었다.
[현령의 기원]
현령의 기원은 757년(신라 경덕왕 16)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전국의 지명을 한식(漢式)으로 고치면서 모두 293개의 현을 두었는데, 현 가운데 규모가 큰 곳에는 소수, 작은 곳에는 현령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를 거쳐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그러나 차이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대현(大縣)에 현령, 소현(小縣)에는 감무를 두었던 것이다. 감무는 나중에 현감으로 바뀐다.
조선 시대의 현령은 관찰사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대전회통』에 의하면 현령을 두도록 되어 있는 곳은 26곳이었다. 전라도에서는 창평(昌平), 용담(龍潭), 임피(臨陂), 만경(萬頃), 금구(金溝) 등에 현령이 파견되는 고을이었다.
[변천]
1715년(숙종 41)에 이르러 용담현이 잠시 용담군(龍潭郡)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파견된 용담의 지방관은 당연히 현령이 아니라 군수라고 불렀다. 조선 왕조 실록 숙종 41년 11월 5일의 기록을 보면 “고(故) 부제학(副提學) 유계(兪棨)가 찬집(纂輯)한 『가례원류(家禮源流)』가 있는데 손자 유상기(兪相基)가 지금 용담 군수(龍潭郡守)로 있으면서 이를 간행(刊行)하여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고 있으니.”라고 하는 기사가 나와 있어 그 점을 알 수가 있다. 한편 용담현은 1895년 이후에 이르러서 다시 한 번 용담군이 된다. 이때도 당연히 군수가 파견되었다.
[용담 현령 재임자]
용담 현령을 지낸 자는 『진안 읍지(鎭安邑誌)』 또는 『진안 군지(鎭安郡誌)』에 실려 있는 선생안을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온전한 것은 아니어서 누락된 자도 있는데. 현재까지 이름이 확인된 용담 현령은 15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