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354
한자 龍潭鄕校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진성로 1697[능금리 220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391년 - 용담 향교 중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7년 - 용담 향교 소실
이전 시기/일시 1633년 - 용담 향교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64년 - 용담 향교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9년 - 용담 향교 양사재 설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60년 - 용담 향교 사마재 설립
이전 시기/일시 1871년 - 용담 향교 양사재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0년 - 용담 향교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 - 용담 향교 대성전 기와 교체 및 동서재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3년 - 용담 향교 대성전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4월 1일 - 용담 향교 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6년 - 용담 향교 대성전, 명륜당 기와 교체 및 관리사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2년 - 용담 향교 대성전 천정 보수
이전 시기/일시 1998년 - 용담 향교 이건
원소재지 용담 향교 -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지도보기 용강산 남쪽 기슭
주소 변동 이력 용담 향교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358 지도보기
현 소재지 용담 향교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진성로 1697[능금리 2202]지도보기
성격 향교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대성전]|4칸[명륜당]|3칸[동재]|3칸[서재]|1칸[비각]
측면 칸수 3칸[대성전]|2칸[명륜당]|2칸[동재]|2칸[서재]|1칸[비각]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있는 향교.

[개설]

용담 향교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있는 고려 시대에 건립된 향교이다.

[위치]

용담 향교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있다. 동향면 소재지에서 안성면으로 이어지는 국가 지원 지방도 49호선을 따라 서남쪽으로 가다가 대야 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진성로를 따라 이동하면 용담 향교가 나온다.

[변천]

용담 향교는 원래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용담면 소재지 북쪽 용강산 남쪽 기슭의 비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려 초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초창 후 1391년(공양왕 3)에 용담 현령 최자비(崔自卑)가 용강산 기슭에 중건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에 불타고 남은 건물을 그 이듬해에 박지술(朴知述)이 동쪽으로 약간 옮겨지었다. 용담 향교가 산의 뒷면 기슭에 있어 항상 습기가 차자 1633년(인조 11)에 현령 오전(吳晪)이 용담면 옥거리 358번지로 이건하였다. 1664년(현종 5)에 현령 홍석(洪錫)이 개축하였다.

용담 향교는 일제 강점기에도 유지되었으나 1950년에 낡아서 무너지자 임병식(林炳植)이 주선하여 보수하였다. 1974년 대성전의 기와를 교체하고, 동재와 서재도 보수하였다. 1983년에는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1986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의 기와를 바꾸었으며, 관리사를 개축하였다. 1992년에는 대성전의 천정을 보수하였다.

서재인 양사재와 관련하여서는 1831년(순조 31)에 양사재계가 결성되었고, 1839년(현종 5)에 태고정 아래에 재사(齋舍)를 세웠으며, 1871년(고종 8)에 용담 향교 남쪽으로 이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52년(철종 3) 사마재계가 구성되고 1860년에 향교 남쪽에 사마재를 지어 연방안 및 계원록을 보관해 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다.

용담 향교용담댐 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하여 1998년에 능금리 2202번지로 이건하였다.

[형태]

용담 향교는 향교의 일반적 구조인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하고 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대성전은 자연석의 덤벙 주초에 도리 기둥, 주심포에 외목도리와 내목도리를 갖춘 맞배지붕의 건물로 전면 3칸, 측면 3칸이다. 좌측은 2칸으로 분리되었으며, 앞쪽의 1칸은 마루이고 뒤쪽의 2칸은 방으로 되어있는 다포 형식 건물이다.

대성전 서쪽에 있는 제기고는 정면 1칸, 측면 2칸[전퇴]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앞쪽의 내삼문은 3칸의 솟을대문이다. 내삼문에서 돌계단을 내려오면 마당 건너 맞은편에 명륜당이 있으며, 그 앞 좌우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시습재(時習齋), 서쪽에 양사재(養士齋)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명륜당은 자연석 주초에 도리 기둥과 맞배지붕의 건물로 전면 4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다.

동재 시습재는 4각 기둥에 맞배지붕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정면 우측 2칸[뒤에서] 1.5칸 부분에 2개의 방을 내고 나머지는 마루로 되어 있다. ‘시습재’라는 편액은 동춘 송준길의 글씨이다.

서재 양사재는 외견상 시습재의 반대 꼴이다. 자연석 주초에 도리 기둥과 맞배지붕, 그리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전면 좌측 2칸, 전퇴 형식으로 나눈 측면의 뒷부분에 2개의 방을 내고 나머지는 마루로 되어 있다.

향교 앞 오른쪽 비각 안에 2기의 비석이 있는데, 1기는 ‘위성건공고학생순계춘백세기념비(衛聖建功高學生詢啓春白世記念碑)’이고, 오른쪽의 다른 1기는 ‘위성건공구학생순백세기비(衛聖建功具學生詢啓春白世記碑)’이다. 명륜당 동쪽 모퉁이 뒤쪽 앞 담장에 있는 외삼문은 4각 기둥 3칸의 솟을대문이다.

[현황]

용담 향교 대성전에는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공자를 비롯한 안회·증삼·자사·맹자 등 5성(五聖)과 주돈이·정호·정이·주희 등 송나라의 4현(四賢), 설총·최치원·안유·정몽주·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 등 우리나라 18현 등 모두 27위를 배향하고 있다.

용담 향교 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향사일인 석전제는 2월과 8월의 초정일(丁日)[천간이 정(丁)자에 해당되는 날]에 지낸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향교는 지방에 있던 교육 기관으로 지역 내의 학술을 선도하는 곳이었다. 현재도 지역 내 많은 학자들의 회합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아동들을 위한 한문 교실을 열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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