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55 |
---|---|
한자 | 鎭安鄕校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향교길 13-6[군상리 527-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노석 |
건립 시기/일시 | 1414년 - 진안 향교 창건 |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592년 - 진안 향교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1년 - 진안 향교 중건 |
이전 시기/일시 | 1636년 - 진안 향교 이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4월 1일 - 진안 향교 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진안 향교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향교길 13-6[군상리 527-1] |
성격 | 향교 |
양식 | 대성전 맞배지붕|동재 맞배지붕|서재 맞배지붕|명륜당 팔작지붕|향안당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4칸[명륜당]|3칸[동재]|3칸[서재]|3칸[향안당] |
측면 칸수 | 2칸[대성전]|2칸[명륜당]|1칸[동재]|2칸[서재]|2칸[향안당] |
소유자 | 향교 재단 |
관리자 | 향교 재단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향교.
[개설]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진안 향교는 1414년에 창건됐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1601년에 중건하였다. 1636년에 현 위치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위치]
진안 향교는 진안읍 군상리 향교길에 있다. 진안읍의 중앙을 통과하는 중앙로를 이용하여 동쪽으로 진출하다가 상림천을 통과하면 바로 좌측으로 향교길이 나온다. 이 향교길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향교가 있다.
[변천]
진안 향교는 1414년(태종 14)에 지금의 진안읍 상조곡(上鳥谷)[윗샛골]에 처음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1년(선조 34)에 중건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이건하였는데 향교가 관아와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했기 때문이라 하기도 하고 향교를 중건한 뒤 춘추 향제(春秋享祭)가 끝나면 이상하게 그날 밤 호랑이가 교복(校僕)을 물어갔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타난다. 1633년 11월 16일조에 전라 감사의 치계에 의하면 “진안 고을의 향교가 관아와 멀고 관리하는 하인의 수가 적어 제대로 수호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지대가 낮고 습하여 건물이 썩고 있으니 좀 더 인가에 가까우면서도 넓고 트인 곳으로 옮겨 세우도록 허락하여 달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라 향교를 이건하기로 결정하고, 1636년에 향리의 유림들이 헌금을 모아 논 3,000평을 마련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921년과 1969년에 중수하였다. 그동안 대성전의 기둥은 싸리나무라고 전해져 왔으나 중수 과정에서 소나무임이 밝혀졌다.
명륜당(明倫堂)의 구체적인 건립 시기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1931년 11월 1일 군수 주시헌의 명륜당 중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중수를 거쳤음을 알 수 있다. 명륜당은 한때 현 진안 초등학교의 전신인 진안 사립 문명 학교의 학당으로 사용된 바 있다.
사마재(司馬齋)는 1757년 김중구가 성균관에 오른 뒤에 낙향하여 사재를 털어 지은 재사이다. 김중구는 이곳에 연방안[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부]을 보관하였다. 또한 진안현의 향안(鄕案)이 본래 관아의 남쪽 근처 향사당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퇴락하여 봉안할 처소가 없자 1860년(철종 11) 향교 경내의 사마재로 옮겼다가 1907년(순종 1) 사마재가 무너지자 영계원의 강사(講舍)로 옮겼다 한다. 이후 향안당(鄕案堂) 창설과 사마재 중건 논의가 일어 1927년 가을 사마재의 옛터에 집을 짓고 동쪽 방은 ‘향안당’이라, 서쪽 방은 사마재라 이름하여 1928년 늦은 봄에 완공하였다.
[형태]
일반적으로 향교의 배치는 배향 공간과 강학 공간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누어지고, 이 밖에 일부 변형된 방법도 쓰이고 있다. 향교가 자리 잡은 대지가 평지인 경우는 전면에 배향 공간이 오고 후면에 강학 공간이 오는 전묘 후학의 배치를 이룬다. 반면 대지가 구릉을 낀 경사진 터이면 높은 뒤쪽에 배향 공간을 두고 전면 낮은 터에 강학 공간을 두는 전학 후묘의 배치를 이룬다.
진안 향교는 전학 후묘의 배치를 취하고 있다. 앞쪽에 학교의 역할을 하는 명륜당이 배치되고 중간에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었으며 뒤에 내삼문을 거쳐 향사를 모시는 대성전이 배치되었다. 전체 공간은 명륜당·동재·서재로 이뤄진 교육 공간과 대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에 의해 이뤄진 제향 공간으로 나누어지며 동쪽에는 별채로 향안당이 있다.
명륜당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위치하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향안당은 향안을 보관하던 곳인데 사마재와 같은 건물에 있다. 향안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대성전은 내삼문 안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1632년에 건립되었으며 기단과 내부 마루를 보수한 것을 빼고는 본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간단한 구조 형식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크다. 구조물의 조각 형식이 거의 없어 매우 단조로운 편이다. 대성전 안에는 1734년(영조 10)에 제작된 공자상이 모셔져 있다.
[현황]
대성전에 봉안된 선현들은 공자를 비롯한 송대(宋代)의 사현(四賢), 공문십철(孔門十哲), 우리나라 고려 시대 사현(四賢), 조선 시대 사현(四賢) 등 모두 27위를 배향하고 있다. 진안 향교 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향교 재단이 소유 관리하고 있으며, 동재는 현재 서고로 사용 중이다.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제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진안 향교는 전학 후묘의 전형적인 배치를 보이는 향교이다. 향교는 전통 시대 지방 교육 기관으로 지역 내의 학술을 선도하는 곳이었다. 현재도 지역 내 많은 학자들의 회합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아동들을 위한 한문 교실을 개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