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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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知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석 |
건립 시기/일시 | 1925년 - 인지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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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27년 - 인지재 훼철 |
원소재지 | 인지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 |
성격 | 사당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4칸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안에 있던 사우.
[개설]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안에 있던 인지재(仁知齋)는 이산묘 건립 초기인 1925년 3월 여택헌(麗澤軒)과 함께 모두 4칸으로 세워진 사우(祠宇)이다.
[위치]
인지재는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안에 있었다. 국도 30호선을 따라 진안으로 가다가 화전 삼거리에서 마이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이산묘가 있다.
[변천]
1924년 12월 18일에 충청남도 공주 숙모전(肅慕殿)에서 개최된 경향 유회(京鄕儒會)에서 진안 대표 오채열(吳采烈)의 제안으로 설립을 추진하여 1925년 3월에 건축을 시작하였다. 서쪽은 인지재(仁知齎)라 하고 동쪽은 여택헌(麗澤軒)이라 하였다. 그 뒤 일본의 방해와 파괴 공작으로 1927년에 훼철되었다.
[형태]
인지재는 모두 4칸이었다.
[현황]
지금은 소산 박성우가 쓴 현판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인지재는 이산묘의 전신인 이산 정사를 구성하던 건물이었다. 독립 운동가를 추모하기 위한 건물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