홰싸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676
이칭/별칭 횃불싸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 대보름날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정월 보름날 마을 간 횃불 겨루기를 통해 풍흉을 점치던 민속 놀이.

[개설]

홰싸움은 정월 대보름 날 밤에 달집태우기에 이어서 하는 민속놀이로, 횃불을 만들어 마을 간 겨루기를 통해 풍흉을 점치던 정월 대보름 풍속의 하나이다. 이 민속놀이는 정월 대보름날에 각 마을끼리 달집태우기를 한 뒤에 시작되는데, 홰는 보통 삼나무 겉껍질을 벗겨낸 저릅대[겨릅대]를 모아서 볏짚으로 단단히 묶어 만든다. 홰싸움의 시작은 어린 초동들이 상대 마을에 접근하여 시비를 걸면서 시작되고, 이를 지켜보다가 심사가 틀어진 청년들이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홰싸움이 격화되면 돌팔매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일대에서는 정월 대보름 날 밤에 횃불 싸움이 치열하였다. 홰싸움은 대개 마을끼리의 대결이어서 싸움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다. 백운면 일대에서는 특히 덕현리반송리·동창리와의 홰싸움이 두드러졌고, 또 하나는 운교리평장리 간의 편싸움이 유명하였다.

[연원]

백운면 주민들에게 정월 대보름과 관련된 민속놀이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이 ‘홰싸움’이다. 현재 나이가 있는 어른들은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 이전까지 홰싸움이 가장 성행하였다고 기억한다. 6·25 전쟁 동안에는 금지되다시피 하다가 1960년대 말까지는 중간에 불 깡통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홰싸움의 골격은 지속되었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진안 지역의 홰싸움달집태우기가 끝날 무렵에 비로소 시작하는 마을과 마을의 횃불 편싸움으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저릅대로 만든 횃불로 시작하지만 싸움이 격해지면 돌팔매 싸움으로 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싸움은 큰 마을 간 싸움일 경우 각기 단일 편대를 만들지만,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의 싸움일 경우에는 작은 마을끼리 연합팀을 만들기도 한다. 덕현리 덕현 마을반송리 반송동창리 동창의 연합 팀을 ‘벌밭’에서 상대하였고, 운교리 원촌평장리 평가를 ‘날망뜰’에서 상대하였다.

[놀이 방법]

홰는 미리 만들어 둔다. 홰를 만들 때 저릅대를 둥글게 말고 그 안쪽에는 불심지를 위해 마른 짚을 넣어서 묶는다. 홰는 손잡이 부분은 좁고, 홰 머리로 갈수록 넓게 만들며, 홰가 한 길 정도가 되어서 하룻밤 내내 사용할 수 있었다.

홰싸움은 어린 초동들이 홰에 불을 붙여 출전한다. 초동들은 상대 마을에 최대한 근접해서 시비를 거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욕을 하면서 ‘아무나 덤벼라!’며 위세를 부린다. 이를 지켜보던 상대 마을에서도 처음에는 어린 초동들이 응대하면서 횃불을 들고 위협하며 맞서다가, 기가 꺾이면 자기 마을로 돌아와서 청년들에게 알린다. 그러면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출전함으로써 본격적인 성인들의 홰싸움이 벌어진다.

홰싸움은 단순히 밀고 밀치는 정도가 아니다. 미리 모여 작전을 짜고, 상대 마을 홰꾼을 납치하기도 하며, 몰래 잠입하여 새막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횃불이 잦아들며 싸움이 길어지면 돌팔매질로 양상이 바뀌기도 한다. 이런 홰싸움 과정에서 어른들은 자기 마을 청년들을 독촉하거나 응원하면서 기세를 한껏 높여준다. 홰싸움에서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홰싸움은 승부 없이 끝난다. 더 격해지면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감정이 상할 수도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하기 때문이다.

[현황]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홰싸움 민속은 1970년대 이후 사라졌다. 홰는 삼나무에서 나온 저릅대를 주로 사용한다. 1960년대 이후 깡통이 보급되면서 불 깡통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에 들어 TV의 보급과 이농 현상으로 홰싸움은 단절되었고 달집태우기가 그를 대신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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