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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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邑 |
영어음역 | Jincheon-eup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태희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에 속하는 법정읍.
[명칭유래]
진천(鎭川)이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때 진주(鎭州)에서 비롯되었다. 진주는 고려 건국 초기 청주 호족 세력의 반란을 진압한 곳, 또는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이 건국한 뒤에는 고려 후기 이후에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을 각 읍락의 호구(戶口)와 전결(田結) 수에 따라 재조정하고 부사(府使) 이하 군현(郡縣)에 주(州)가 붙은 지명을 달리 고치게 하였다. 이에 따라 1413년(태종 13) 진주를 진천으로 바꾸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진천군의 남쪽에 있어 남변면이라 하였고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변면 12개 리, 행정면 20개 리, 서암면 32개 리, 덕문면 18개 리를 병합하여 관할하였고, 1917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다. 1930년 명암리·사송리·태락리가 인근 면 관할이 되었고 덕산면 삼덕리를 진천면으로 편입하여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3년 7월 1일 진천읍(鎭川邑)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월면 송두리·가산리, 덕산면 상신리·산척리를 편입하였다.
[자연환경]
차령산맥(車嶺山脈) 줄기가 서쪽으로 무이산[462m]에서 만뢰산(萬賴山)[612m], 남쪽으로 문안산(文案山)[415m]에서 두타산(頭陀山)[598m], 동쪽으로 두타산에서 부용산(芙蓉山)[644m]으로 이어진다. 진천읍 중앙에서 이월면·광혜원면·덕산면으로 이어지는 넓은 진천평야의 남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진천평야 중앙으로 미호천(美湖川)이 남류하고, 서쪽으로 험준한 차령산맥 줄기와 닿아 있다. 기후가 온난하고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현황]
진천군의 중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55㎢이며, 2016년 6월 30일 현재 총 12,637세대에 30,596명[남자 15,633명, 여자 14,96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 20개 법정리, 76개 행정리, 335개 반, 82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중부고속도로가 진천읍 서부를 지나고, 국도 17호선과 국도 21호선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전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특히 수리 시설이 잘 되어 있고 토양이 비옥하여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조업은 진천농공단지를 중심으로, 서비스업은 진천읍 주변으로 발달하였다. 교육 기관으로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3곳이 있다.
문화재로 보물 제404호인 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 사적 제414호인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1호인 진천향교(鎭川鄕校),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용화사 석조보살입상(龍華寺石造菩薩立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6호인 지암리 석조여래입상(芝岩里石造如來立像) 등이 있다.